우리는 지금 인간 존재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유전자 편집 기술 크리스퍼는 질병 치료를 넘어 인간 능력의 향상을 가능하게 했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작하는 세계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학습하며 때로는 우리보다 더 나은 판단을 내린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가 오래도록 당연하게 여겨온 질문 하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는 누구인가?
몸의 경계가 사라질 때
정체성에 관한 전통적 사고는 대부분 몸과 마음의 경계를 전제로 한다.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기억. 이 모든 것이 분명한 경계 안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의수족이 뇌파로 제어되고, 임플란트로 기억을 저장하며, 유전자 치료로 신체 능력을 바꿀 수 있는 시대에 이 경계는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
길거리에서 보청기를 착용한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를 온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시력을 증강하는 전자 안구는? 팔다리를 대체한 로봇 의지는? 뇌에 이식된 기억 칩은?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서부터가 기계인가? 이 물음은 단순한 사고실험이 아니다. 실제로 전신 마비 환자들은 이미 뇌 임플란트를 통해 컴퓨터를 제어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에 기술을 통합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연결된 자아의 등장
더 근본적인 변화는 정체성의 개별성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내 생각은 온전히 나만의 것일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보고, 타인의 반응에 영향받으며, 집단의 정서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거대한 네트워크의 한 노드가 된다.
후기 인간 시대는 이런 연결성을 극대화한다. 뇌와 뇌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 개발되면, 타인의 경험을 직접 느끼고 집단 의식에 접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 정체성은 개인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관계의 총합이 될지도 모른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리좀적 주체성, 즉 중심 없이 수평적으로 연결되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자아의 모습이 현실이 되는 셈이다.
기억과 정체성의 딜레마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기억이다. 내가 경험한 것들의 연속성이 나를 만든다. 그런데 만약 기억을 편집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면? 이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위해 특정 기억을 약화시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억을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된다면, 정체성은 어떻게 될까?
오늘 아침 먹은 음식에 대한 기억과 십 년 전 첫사랑의 기억이 동일한 무게를 가질 수는 없다. 우리의 정체성은 선택적 기억, 왜곡된 기억, 망각된 기억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서사다. 그렇다면 기술이 이 서사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될 때, 진정한 자아란 과연 존재하는가? 기억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존재에게 정체성이란 개념은 여전히 유효한가?
열린 정체성을 위하여
후기 인간 시대의 정체성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유동적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기술, 타인,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매듭이다. 이는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술이 우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술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하고 재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후기 인간 시대의 정체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몸의 경계를 넘어서고, 개별성의 환상을 버리며, 기억의 절대성을 의심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선택한 이 변화가 진정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