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업무 메일을 읽고, 퇴근 후에는 내일 할 일을 정리한다. 우리는 이것을 '성실한 삶'이라 부르지만, 가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사는 걸까, 아니면 정해진 루틴에 끌려가는 걸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바로 이 질문 앞에 한 명의 인물을 세운다. 물레를 돌리는 데 방해가 된다며 자신의 손가락을 서슴없이 잘라버리고, 부패한 수도원에는 주저 없이 불을 지르는 남자. 그는 세상의 온갖 규칙과 상식을 비웃으며 오직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
둘의 만남은 단순한 우정 이상이다. 이것은 '아는 것'과 '사는 것', '관조'와 '실천'의 충돌이다.
조르바의 이 한마디는 현대인의 아픔을 정확히 찌른다. 우리는 '만약에'라는 가정 속에서 살고, '~해야 한다'는 당위에 짓눌려 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정작 지금 이 순간은 놓쳐버린다.
조르바는 다르다. 그는 실패해도 춤을 춘다. 사랑하는 여인이 죽어도, 사업이 망해도, 그는 해변에서 춤을 춘다. 이것은 무책임이 아니다. 이것은 니체가 말한 '운명애(amor fati)', 즉 자기 운명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는 태도다.
2025년 현재,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와 선택지 앞에 서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점점 더 불안해하고, 더 많이 망설인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는가, 아니면 그저 생존하고 있는가? 당신의 결정은 진짜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남들의 기대를 내면화한 것인가?
조르바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본다. 책과 이론 속에 갇혀 있던 우리의 몸과 마음이 깨어나는 경험을 한다.
이 강의는 단순히 한 권의 소설을 분석하는 자리가 아니다. 카잔차키스의 생애에서부터 니체의 『비극의 탄생』, 그리고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미학까지, 조르바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여정이다.
조르바가 보여주는 자유로운 영혼의 초상 앞에서, 당신 자신의 삶을 다시 질문해보는 시간. 이 강의가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