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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의 면도날이
세상을 자르다
불필요한 가설들을 베어내는 한 줄기 빛
1320년, 영국 서리 지방
1320년 가을 밤
영국의 한 수도원 서재에서 프란체스코회 수사 윌리엄이 촛불 아래 펜을 달리고 있었다. 그는 아직 몰랐다. 자신이 지금 써내려가는 몇 줄의 문장이 700년 후 과학혁명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스콜라 철학의 복잡한 논증들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이 모든 복잡한 설명들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촛불이 흔들리며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윌리엄은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그림자를 설명하기 위해 그림자 뒤에 또 다른 그림자를 가정할 필요는 없다. 촛불과 물체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라틴어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Entia non sunt multiplicanda praeter necessitatem"

필요 이상으로 존재를 늘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후세 사람들이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부르게 될 원리의 탄생 순간이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더 적은 가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가정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3-14세기 스콜라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 교리를 결합하려 했다. 하지만 점점 더 정교해지면서 온갖 형이상학적 실체들을 가정하기 시작했다.
보편자, 개별화 원리, 질료와 형상의 복합체... 설명해야 할 것보다 설명하는 요소들이 더 많아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윌리엄은 이런 경향을 경계했다. 면도날로 수염을 깎아내듯 사고에서도 군더더기를 제거해야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원리는 단순한 철학적 선호가 아니었다. 윌리엄에게는 깊은 신학적 의미가 있었다. 신이 전능하다면 복잡한 중간 매개체들 없이도 직접 세상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 수많은 천사의 위계나 형이상학적 존재들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14세기 신학 논쟁에서 시작된 이 원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17세기 과학혁명 시대 갈릴레이와 뉴턴이 복잡한 천구 이론 대신 단순한 수학적 법칙으로 자연을 설명한 배경에도 오컴의 면도날이 있었다.
현대에는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다윈의 진화론도 모두 복잡한 설명을 단순하고 우아한 원리로 대체한 사례들이다.
1320년 그 밤, 윌리엄이 양피지에 써내려간 몇 줄의 문장은 700년을 넘나들며 인류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중세의 한 수도사가 제시한 '단순함의 원리'는 과학혁명을 거쳐 현대 디지털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의 면도날은 여전히 예리하게 불필요한 복잡성을 잘라내며, 진실을 향한 길을 열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