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불완전한 복사본에 불과했다.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꽃, 정의로운 행동, 완벽한 원도 모두 진짜 완벽한 원형의 그림자일 뿐이다.
플라톤이 현대에 살았다면 인스타그램 필터의 철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정된 사진과 가공된 일상을 보며 그것이 진짜 삶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플라톤은 그 완벽한 셀카의 이데아, 진정한 아름다움의 원형이 존재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진짜 현실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우리가 만지고, 보고, 경험하는 이 구체적인 세계야말로 진짜 실재다.
'인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라는 구체적인 개인이 실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현대에 살았다면 '라이브 스토리'의 철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보정도 편집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을 테니까.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제3의 인간 논증"으로 비판했다. 완벽한 원형을 상정하는 순간 무한히 많은 중간 단계들이 필요해진다는 논리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디지털 세상은 또 다른 동굴이다. 사람들은 스크린 속 이미지를 보며 그것이 현실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가상의 세계를 통해 더 완벽한 이상향에 접근할 수 있다.
게임 속에서 구현되는 완벽한 세계, AI가 만들어내는 이상적인 이미지들은 그의 이데아론과 묘하게 닮아있다.
아무리 정교한 VR 기술이라도 실제 바람을 맞고,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가상의 경험보다 몸으로 체험하는 직접적인 현실을 중시했을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완벽한 이상인가, 아니면 불완전하지만 구체적인 현실인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비전을 제시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완벽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다.
우리를 땅에 발을 붙이고 살게 한다. 추상적 이상보다 구체적 경험과 실천을 중시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다.
이상을 품되 현실을 놓치지 않고, 현실에 발을 딛되 더 나은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 두 철학자가 현대에 만났다면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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