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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 속에서 구성되는 자아
좋아요를 누르고 받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게시물을 올리고 반응을 기다리는 순간, 이미 우리의 자아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 완성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헤겔의 인정투쟁
자기의식은 다른 자기의식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상호 인정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좋아요는 이런 인정투쟁의 디지털 버전이다.
카페 라떼 사진의 좋아요 50개가 커피 맛을 바꾸지는 않지만, 그 숫자는 '너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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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과 연출 사이의 딜레마
좋아요를 받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연출하게 되고, 이 연출된 자아가 점차 '진짜' 자아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먼저 사진을 찍고, 여행할 때 인스타그램을 먼저 생각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진다.
타인의 시선을 받는 순간 주체가 객체로 전환되는 현상
- 사르트르, 『존재와 무』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처럼 원본과 복사본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시뮬레이션된 정체성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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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착각과 고립의 심화
좋아요는 소통의 환상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좋아요를 주고받으며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더욱 고립되어 간다. 좋아요는 즉각적이고 표면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소통을 대체해버린다.
디지털 볼링 얼론
로버트 퍼트넘이 지적한 사회적 자본 쇠퇴의 디지털 버전. 물리적으로는 더 연결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외로워지는 역설.
좋아요는 이분법적 반응만을 허용해 감정의 복잡성을 단순화시키고, 즉시성의 문화를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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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과 욕망의 조작
SNS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우리의 좋아요 패턴을 분석해서 더 많은 반응을 유도하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욕망은 점점 더 알고리즘에 의해 조작당한다.
좋아요를 많이 받은 콘텐츠는 더 노출되고, 적게 받은 콘텐츠는 묻혀버려 획일화된 콘텐츠가 양산된다.
디지털 마약
좋아요 알림이 올 때마다 도파민이 분비되어 중독적 행동 패턴을 만들어낸다. 건강한 자기 표현이 아닌 중독적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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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계의 가능성과 한계
좋아요는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와 공감의 방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소외된 집단에게는 연대의 표현이 되고, 참여형 민주주의의 기본 단위 역할을 한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했을 때 받는 좋아요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수치화된 평가는 질적 소통보다 양적 반응에 치중하게 만들고, 다수의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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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적 거리두기의 필요성
좋아요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도, 전면적인 거부도 아닌 성찰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것에만 의존해서는 진정한 자아를 잃을 수 있다.
실천 방안
좋아요의 중독성을 인식하고, 진정한 소통을 추구하며, 획일화와 상업화에 저항해야 한다.
주체적이고 성찰적인 태도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면서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실존 조건
좋아요는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 작은 버튼 하나에 인간의 인정욕구, 소통의 갈망, 존재의 불안, 관계에 대한 욕구가 모두 담겨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실존 조건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아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지혜다. 좋아요를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그것에 완전히 종속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