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외국어 문서를 마주했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구글 번역기를 켜는 순간을. 몇 초 만에 번역된 텍스트가 화면에 나타나고, 우리는 안도한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허전함도 느낀다.
내비게이션이 우리의 공간 감각을 무디게 했고, 계산기가 암산 능력을 약화시켰으며, 인터넷이 기억력을 외부화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잃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이 존재자를 단순한 자원으로 전환시킨다고 지적했다. 번역 기술의 경우, 언어를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로 환원하는 것이다.
온라인 번역기에 의존하면서 우리가 잃는 것은 단순히 어휘력이나 문법 실력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번역 기술이 가져온 긍정적 변화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언어 장벽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정보들이 이제는 손쉽게 다가온다. 전 세계의 지식이 순식간에 우리 앞에 펼쳐진다.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터넷이 우리의 깊이 있는 독서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이는 번역 기술에도 적용될 수 있다.
기술 거부도 맹목적 수용도 아닌, 성찰적 사용이다.
온라인 번역기를 사용하되 그것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적 경험의 영역을 인식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번역 기술을 완전한 대안이 아닌 보조 도구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급하게 정보를 파악해야 할 때는 번역기의 도움을 받되,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한 텍스트는 여전히 직접 해석해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기술과 인간 능력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명확히 인식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다움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