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이 30대 이하 청년층에서 30%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 독일에서는 청년층의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당 지지율이 20%를 넘어섰다. SNS에는 이민자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청년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한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의 가치 속에서 자란 세대가 왜 권위주의와 배제의 정치를 선택하는가.
1941년 에리히 프롬은 나치즘을 선택한 독일 대중의 심리를 분석하며 자유의 역설을 밝혔다. 자유는 인간에게 독립과 선택권을 주지만, 동시에 고독과 불안이라는 무거운 짐도 함께 안긴다는 것이다. 80년이 지난 지금, 유럽의 청년들은 다시 한번 자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의 양면성 - 선택의 부담
자유로운 사회는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한다.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곳에 살며, 자기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자유가 청년들을 짓누른다. 취업 시장은 불안정하고, 주거비는 감당하기 힘들며, 미래는 불확실하다. 부모 세대가 누렸던 안정적인 삶의 경로는 사라졌다.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선택의 자유는 때로 선택의 지옥이 된다.
독일의 25세 청년이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하고 계약직을 전전하며 부모님 집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가 느끼는 건 자유가 아니라 무력감이다. 프랑스 파리 외곽의 청년이 집값 때문에 도심에서 밀려나 이민자 밀집 지역에 살게 될 때, 그가 마주하는 건 다양성이 아니라 경쟁의 현장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선택권을 주었지만, 선택을 잘할 수 있는 조건은 주지 못했다.
불안에서 증오로 - 심리적 도피 메커니즘
프롬은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자유 앞에서 도피의 길을 찾는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고립 속에서 청년들은 자신의 무력함을 견디기 어렵다. 이때 등장하는 게 대리 표적이다. "우리가 힘든 건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서다", "무슬림들이 우리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는 설명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만든다.
증오는 불안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누군가를 탓하고 배척할 때,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극우 정당들은 이 심리를 정확히 파고든다. 그들은 "당신이 힘든 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분노의 출구를 제공한다. SNS는 이런 메시지를 증폭시킨다. 알고리즘은 분노와 혐오가 담긴 콘텐츠를 더 많이 보여주고, 청년들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한다.
누가 결정해줬으면 좋겠어요 - 권위주의의 유혹
극우 정당이 제시하는 건 단순하고 명확한 세계다. "우리"와 "그들"을 분명히 구분하고, 강력한 지도자가 모든 걸 해결해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런 메시지는 선택의 부담에 지친 청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복잡한 정책 토론도, 어려운 가치 판단도 필요 없다. 그저 강한 리더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프롬이 지적했듯, 이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다. 자유가 주는 불안과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복종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치 시대 독일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유럽의 일부 청년들도 자유의 무게를 내려놓고 권위에 기대고 싶어한다. SNS에 떠도는 "차라리 독재가 낫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짜 심리의 표출일 수 있다.
불안을 넘어서 - 적극적 자유로
프롬은 자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와,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는 적극적 자유. 유럽 청년들이 누리는 건 소극적 자유다. 독재와 억압에서는 벗어났지만, 진정한 자아를 실현할 조건은 갖추지 못했다. 불안정한 노동시장, 치솟는 주거비, 기후위기의 공포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는 어렵다.
극우의 유혹을 넘어서려면 소극적 자유에서 적극적 자유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들이 단순히 "~로부터 자유롭다"를 넘어서 "~을 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사회적 관계망, 의미 있는 참여의 기회. 이런 것들이 있을 때 비로소 자유는 부담이 아니라 가능성이 된다.
증오와 배제의 정치는 일시적 안도감을 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질 뿐이다. 80년 전 유럽이 그랬다. 프롬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자유의 부담을 견디며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불안을 피해 권위의 품으로 도피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