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를 어떻게 불러왔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방식은 문명마다 달랐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의 생물학 교과서, 자연사 박물관, 유전체 데이터베이스에는 단 하나의 학명이 통용된다. Homo sapiens. 이 두 단어는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린네(Carl Linnaeus)가 1758년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 제10판에서 인간 종에 붙인 이름이다. 라틴어로 풀면 '지혜로운 인간(wise man)'이다.
그런데 이 이름은 단순한 생물학적 분류 기호가 아니다. 그 안에는 수천 년에 걸쳐 서구 문명이 쌓아올린 인간관, 즉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결정적 속성이 '이성(ratio)' 또는 '지혜(sapientia)'에 있다는 믿음이 압축되어 있다. 이 학명은 하나의 철학적 선언이기도 하다.
homo: 땅에서 나온 존재
라틴어 homo는 단순히 '남자'를 뜻하는 vir와 구별된다. homo는 성별을 초월한 '인간 일반'을 가리킨다.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도-유럽어 공통 조어(Proto-Indo-European)의 어근 *dhghem-, 즉 '땅(earth)'과 연결된다. 영어의 humus(부식토), humble(낮은, 겸손한), 심지어 exhume(발굴하다)도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이 어원적 연결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땅에서 나온 존재', 흙으로 빚어진 존재라는 관념이 라틴어 homo 안에 잠들어 있다. 히브리 성경의 창세기에서 신이 adamah(흙)로 adam(인간)을 빚었다는 이야기,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전승,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인간이 진흙과 신의 피로 창조되었다는 신화와도 공명한다. '인간'이라는 단어에 '흙'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문명권을 막론하고 놀랍도록 일관된 인간 기원 감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린네가 homo를 학명의 앞자리에 놓았을 때, 그 어원적 겸손함은 뒤에 오는 형용사 sapiens에 의해 역전된다. 흙에서 나왔지만 지혜를 가졌다는 것, 이것이 서구의 인간관이 설정한 긴장의 구조다.
sapiens: 맛보는 자, 그리고 아는 자
sapiens는 라틴어 동사 sapere의 현재분사다. sapere는 '맛을 느끼다(to taste)', '분별하다(to discern)', '알다(to know)', '지혜롭다(to be wise)'는 뜻을 겹겹이 품고 있다. 영어 savor(맛보다, 음미하다), savant(박식가), insipid(맛없는, 무미건조한) 같은 단어들이 모두 같은 어근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안다'는 것이 본래 '맛본다'는 감각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추상적 인식 능력이 감각적 식별 능력에서 파생된 셈이다. 무엇이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혀로 판단하던 능력이, 은유적으로 확장되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지혜의 개념으로 발전했다.
철학사에서 이 흐름을 가장 명확하게 정식화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sophia(지혜)를 실천적 지혜인 phronesis와 구별하면서, 인간 특유의 인식 능력이 인간을 다른 동물 위에 놓는다고 주장했다. 이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이 라틴어권으로 번역될 때 sophia는 sapientia가 되었고, 그 압축된 형태가 바로 sapiens다.
ratio와 logos: 서구 인간관의 두 기둥
서구 철학에서 인간을 정의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로 수렴해왔다. 하나는 그리스어 logos(로고스)이고, 다른 하나는 라틴어 ratio(라티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정의, "인간은 로고스를 가진 동물(ζῷον λόγον ἔχον, zōon logon ekhon)"에서 logos는 단순히 '이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logos는 동시에 '말(language)', '관계(relation)', '의미(meaning)', '비율(proportion)'을 포함하는 다의어였다. 인간이 언어를 가졌다는 것, 의미를 만들고 공유한다는 것,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의 고유성이었다.
그런데 이 logos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ratio가 되었다. ratio는 '계산(calculation)', '셈(reckoning)', '이성(reason)'의 뉘앙스가 강하다. logos의 감각적·언어적·관계적 풍부함이 ratio의 계산적·분석적 단일성으로 좁아진 것이다. 이 번역의 손실은 서구 철학사에서 '이성 중심주의'가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철학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에서 지적한 바 있다.
sapiens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logos의 전통과 ratio의 전통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지혜롭다는 것, 분별한다는 것, 이 능력이 인간 종을 규정하는 본질로 채택된 것이다.
린네의 분류와 철학적 선언
칼 린네가 이 학명을 붙인 1758년은 계몽주의 전성기였다. 이성이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다는 낙관, 자연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유럽 지식인들을 사로잡던 시대였다. 린네의 학명 작명은 그 시대 정신의 산물이었다.
흥미롭게도 린네는 처음에 Homo sapiens에 아종(subspecies)을 달았다. Homo sapiens europaeus, Homo sapiens asiaticus, Homo sapiens afer, Homo sapiens americanus처럼 지리적·외모적·기질적 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세분했다. 그리고 europaeus에는 "총명하고, 독창적이고, 법에 의해 지배된다"는 속성을, afer에는 "교활하고, 게으르고, 충동에 의해 지배된다"는 속성을 부여했다. 이 분류는 이후 과학적 인종주의의 이론적 기반으로 오용되었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학명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내부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언어로 전용된 역사가 여기 있다. 종 이름으로서의 Homo sapiens는 모든 인간을 포괄하지만, 린네의 아종 분류는 그 '지혜'를 특정 집단에만 귀속시키는 편향을 드러냈다. 현대 생물학은 이 아종 분류를 폐기했고, 오늘날 모든 현생인류는 Homo sapiens sapiens 단일 아종으로 분류된다.
동아시아의 인간관과의 대비
homo sapiens가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서구적 인간관을 압축한다면, 동아시아는 인간을 어떻게 정의했는가.
한자 문화권에서 인간을 뜻하는 '人(인)'은 두 획이 서로 기대는 모양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인간은 홀로 서지 않고 서로 의지하는 존재라는 관계론적 인간관이 글자 형태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의 진위와 무관하게, 유교 전통에서 인간의 본질은 '인(仁)'이라는 개념으로 수렴된다. 인은 '어질다', '사랑하다', '서로 연결되다'를 뜻한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인을 인간다움의 핵심으로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 대비는 선명하다. 서구의 homo sapiens가 개인의 인식 능력, 즉 지혜를 인간의 본질로 규정한다면, 동아시아의 인(仁) 전통은 타자와의 관계, 즉 연결과 공감을 인간의 본질로 규정한다. 인식 주체냐, 관계 존재냐. 이 차이는 두 문명이 각각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로 발전해온 배경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전통에서는 인간을 manuṣya(마누샤)라 불렀는데, 이는 '마음(manas)을 가진 존재'에서 유래한다. 마음, 즉 사유 능력이 인간을 정의한다는 점에서 homo sapiens와 유사하지만, 인도 철학에서 manas는 순수 이성이 아니라 감정·지각·의지를 포함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었다.
'지혜롭다'는 것은 자기 과신인가
Homo sapiens라는 이름 자체가 일종의 자기 선언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스스로에게 '지혜롭다'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다른 어떤 종도 스스로를 명명하지 않는다. 이 명명 행위 자체가 이미 인간의 독특한 능력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심각한 자기 과신의 증거이기도 하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풀하우스(Full House)』에서 진화에는 방향도 목적도 없으며, 인간이 진화의 정점이라는 관념은 착각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지구 생명 역사의 마지막 순간에 등장한 한 종일 뿐이다.
그러나 더 뼈아픈 지적은 고고학적 증거에서 나온다. 현생 인류가 진정으로 'sapiens'였다면, 지난 만 년간 저지른 전쟁, 학살, 생태 파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사피엔스(Sapiens)』에서 이 아이러니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의 다른 어떤 종보다 많은 생물 종을 멸종시킨 생태계 파괴자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지혜롭다'는 이름은 인간의 자기 이해의 역사이자, 동시에 그 자기 이해가 얼마나 편향적이고 과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현대 한국어로 이 단어를 생각하다
한국어에서 '인간(人間)'이라는 단어 자체도 흥미롭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하는 이 단어는 일본 메이지 시대 번역어를 통해 정착된 것으로, 중국 고전의 人間이 '인간 세상'을 뜻하던 것과 달리 오늘날에는 '인간 존재' 자체를 가리킨다. 번역을 거치면서 의미가 이동한 대표적 사례다.
오늘날 우리가 'Homo sapiens'라는 학명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서구적 이성 중심 인간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입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을 관계로 정의하는 동아시아적 전통, 마음과 감정을 포함하는 인도적 전통과 나란히 놓고 볼 때, homo sapiens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답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복수성을 인식하는 것, 어느 하나의 정의에 고정되지 않고 인간에 대한 물음을 계속 열어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sapiens다운 태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