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나이는 대학 새내기의 나이다. 수강 신청을 망치고, 첫 미팅에 설레고, 술을 처음으로 마셔보는 나이. 그런데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는 열아홉 살에 『지옥의 계절』(Une Saison en Enfer, 1873)을 썼다.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문학을 완전히 버렸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다. 랭보는 스물한 살 무렵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을 떠돌며 무기 밀매상과 커피 상인으로 살았다. 시는 단 한 줄도 더 쓰지 않았다. 서른일곱 살에 무릎 종양으로 다리를 잃고, 서른일곱에 죽었다.
그가 남긴 시집은 얇다. 그러나 그 얇은 책이 이후 150년 동안 서구 문학과 철학을 뒤흔들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를 아버지라 불렀고, 실존주의자들은 그에게서 선구자를 보았다. 짐 모리슨(Jim Morrison)은 그를 록 음악의 신으로 떠받들었고, 밥 딜런, 패티 스미스, 리처드 헬 등 수십 명의 예술가들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도대체 이 열아홉 살짜리가 지옥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2.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 단테와 랭보의 차이
비교가 불가피하다. 지옥을 쓴 가장 유명한 선배가 있기 때문이다.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의 『신곡』(La Divina Commedia, 1308~21)이다. 단테의 지옥(Inferno)은 우주론적이다. 죄의 종류에 따라 층이 나뉘고, 각 층에서 죄인들은 상응하는 형벌을 받는다. 지옥은 저 아래 어딘가에 있고, 우리는 살아서는 갈 수 없으며, 죽은 뒤 죄의 무게에 따라 그곳에 배치된다.
랭보의 지옥은 다르다. 그것은 저 아래에 없다. 지금 여기, 이 현실 안에 있다. 『지옥의 계절』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찍이 나는, 내 기억이 옳다면, 내 삶은 하나의 향연이었다. 모든 마음이 열리고, 모든 포도주가 흘러넘치던."(Jadis, si je me souviens bien, ma vie était un festin où s'ouvraient tous les cœurs, où tous les vins coulaient.)
그러나 그 향연은 끝났다. 그리고 지금 그는 지옥에 있다. 이 지옥은 사후의 형벌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실존 상태다. 더 정확히는, 자신의 언어와 욕망과 반항이 만들어낸 내면의 지옥이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중요한 이동이다. 단테에게 지옥은 신학적 우주론의 일부였다. 랭보에게 지옥은 인간 실존의 한 양태다. 신이 설계한 형벌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반항으로 진입하는 경험의 공간.
3. 견자(見者)의 선언 — 감각의 완전한 해체
랭보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 있다. '견자(voyant)', 즉 '보는 자'다. 랭보는 1871년, 열여섯 살 때 시인 친구 폴 드므니(Paul Demeny)에게 편지를 썼다. 이것이 이른바 '견자의 편지(Lettre du Voyant)'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길고 광대하며 이성적인 착란을 통해 견자가 된다. 온갖 형태의 사랑, 고통, 광기. 스스로를 탐구하고, 자신 안의 모든 독을 소진하며, 그 정수만을 간직한다."(Le Poète se fait voyant par un long, immense et raisonné dérèglement de tous les sens.)
이 '감각의 착란(dérèglement de tous les sens)'이 랭보의 시학 전체를 지배하는 원리다. 시인은 기존의 감각 방식, 기존의 언어 방식, 기존의 사유 방식을 의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 낯선 것,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을 통과해야만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예술론이 아니다. 철학적으로 이것은 인식론의 혁명 선언이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에서 우리의 인식이 감성의 형식(시간과 공간)과 오성의 범주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 형식과 범주는 보편적이고 선험적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틀로 세계를 인식한다.
랭보는 정확히 이 칸트적 틀을 파괴하려 했다. 주어진 감각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교란함으로써, 그 형식 너머의 무언가를 포착하려 한 것이다. 이것이 '착란'이 '이성적(raisonné)'이라는 역설적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이유다. 그것은 충동적 광기가 아니라, 인식의 한계를 넘으려는 계획된 실험이었다.
4. 폴 베를렌과의 관계 — 사랑이라는 지옥
『지옥의 계절』을 이야기하면서 폴 베를렌(Paul Verlaine, 1844~1896)을 빼놓을 수 없다. 두 시인의 관계는 문학사에서 가장 파국적인 사랑 이야기 중 하나다.
랭보가 열여섯 살 때 시를 보내면서 시작된 인연. 베를렌은 당시 이미 결혼한 상태였지만, 랭보에게 파리로 오라는 초청장을 보냈다. 이후 두 사람은 파리, 런던, 브뤼셀을 떠돌며 함께 살았다. 술과 마약, 싸움과 화해의 연속. 1873년 브뤼셀에서 베를렌은 권총으로 랭보의 손목을 쏘았다. 베를렌은 감옥에 갔고, 랭보는 혼자 어머니의 농가로 돌아가 『지옥의 계절』을 완성했다.
작품 안에 '지옥의 남편(L'époux infernal)'이라는 장이 있다. 이 장에서 랭보는 스스로를 '어리석은 처녀(la Vierge folle)'로, 베를렌을 '지옥의 남편'으로 설정하여 그 관계를 해부한다. 사랑은 구원이 아니었다. 사랑 자체가 지옥의 한 계절이었다.
철학적으로 이것은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의 유명한 명제 "타인은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res)"와 겹친다. 『닫힌 방』(Huis clos, 1944)에서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이 어떻게 나를 사물화하고 나를 지옥 속에 가두는지를 보여준다. 랭보는 사르트르보다 70년 앞서, 구체적 관계 속에서 이 진실을 몸으로 살았다. 개념이 아니라 총알로.
5. 기독교 문명과의 결별 — "서양이 나를 갉아먹는다"
『지옥의 계절』에서 가장 철학적으로 중요한 대목은 '나쁜 피(Mauvais Sang)'라는 장이다. 랭보는 여기서 자신의 정체성을 추적한다.
"나는 갈리아인(Gaul)의 후손이다. 내 조상들은 살가죽을 벗기고 금발을 태웠다. 나는 기독교에 반한다. 나는 기독교가 발명한 명예의 원칙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마음의 발작, 문명의 발작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양이 나를 갉아먹는다."
이 선언은 단순한 청년의 반항이 아니다. 이것은 문명 비판이다. 랭보가 거부하는 것은 기독교 도덕, 노동 윤리, 진보의 신화, 유럽 문명의 전체 패키지다. 그가 "야만인(barbare)"을 자처하는 것은 이 문명 바깥의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문제의식과 정확하게 겹친다.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Zur Genealogie der Moral, 1887)에서 분석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기독교 도덕은 본질적으로 '노예 도덕'이다. 약자들이 강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힘과 생명력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복종과 겸손을 미덕으로 치환한 역사적 발명품이다. 랭보는 이 도덕 체계 전체를 열아홉 살의 몸으로 거부했다. 니체는 그것을 몇 년 뒤 철학적으로 체계화했다.
놀라운 것은 시간 순서다. 랭보의 『지옥의 계절』은 1873년이고,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은 1887년이다. 랭보가 먼저였다.
6. 언어의 연금술 — 말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가
랭보의 또 다른 핵심 시집 『일뤼미나시옹』(Illuminations, 1886, 사후 출판)과 함께, 그의 시학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 있다. 언어는 현실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현실을 창조하는가.
전통적 관점에서 언어는 도구다. 이미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된다. 나무를 보면 "나무"라고 말한다. 언어는 세계의 지도다.
랭보는 이것을 뒤집으려 했다. 그는 '언어의 연금술(alchimie du verbe)'을 선언했다. 『지옥의 계절』의 '착란 I(Délires I)' 장에서 그는 이것을 명시한다. 그는 낡은 시적 관습을 버리고, 단어들의 낯선 조합으로 새로운 감각,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려 했다. 의미가 불분명한 문장, 문법적으로 불완전한 연결, 색과 소리를 교환하는 공감각(synesthesia). 그의 유명한 시 「모음들(Voyelles)」에서 A는 검정, E는 흰색, I는 빨강, U는 초록, O는 파랑으로 선언된다. 왜? 그렇게 될 때 언어는 단순한 기호 체계를 넘어 새로운 지각 방식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20세기 언어철학과 연결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논리철학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1)에서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했다. 그리고 후기 저작 『철학적 탐구』(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1953)에서는 언어가 세계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게임(Sprachspiel) 안에서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랭보는 이 논의를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 안에서 동일한 문제를 먼저 살았다. 언어를 바꾸면 세계가 바뀐다. 아니, 적어도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이 바뀐다.
7. 탈주의 철학 — 아프리카로 간 이유
1875년, 랭보는 시를 완전히 버렸다. 이후 그는 자바, 키프로스, 에티오피아, 아덴, 하라르를 거치며 살았다. 무역상, 무기 밀매상, 커피 수출상. 그 어디에도 시인의 흔적은 없었다.
왜 그랬을까. 많은 해석이 있다. 가장 단순한 것은 실망설이다. 자신이 꿈꾼 '견자'의 시학이 현실에서 불가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또 다른 해석은 성공 공포설이다. 『지옥의 계절』은 당시 거의 팔리지 않았다. 실패에 지쳐서 떠났다는 것.
그러나 철학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해석은 탈주(fuite) 자체를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는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 1980)에서 '탈주선(ligne de fuite)'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것은 단순히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영토성(territorialité), 즉 자신을 가두고 있는 체계와 코드를 벗어나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내는 운동이다.
랭보의 아프리카 탈주는 이 개념으로 읽힐 수 있다. 그는 유럽 문명, 시인이라는 정체성, 언어 체계 자체로부터 탈주했다. 글을 쓰지 않는 것이 또 다른 글쓰기의 방식이었다. 침묵이 언어의 한 형태였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무기를 팔면서도, 그 행위 안에 여전히 '문명의 바깥을 살겠다'는 랭보적 선언이 살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들뢰즈는 이렇게 말했다. "탈주하는 자는 동시에 무언가를 탈주하게 만든다." 랭보는 유럽 시문학을 탈주하면서, 동시에 그 문학 자체가 기존의 틀에서 탈주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시를 쓰지 않게 된 이후, 시는 그를 따라 변했다.
8. 실패한 지옥, 그러나 완전한 기록
『지옥의 계절』의 마지막 장 '작별(Adieu)'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진리를 내 영혼 안에 되찾을 것이다. 나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을 포용할 것이다."(Je dois enterrer mon imagination et mes souvenirs. Une belle gloire d'artiste et de conteur emportée! / Moi ! moi qui me suis dit mage ou ange, dispensé de toute morale, je suis rendu au sol, avec un devoir à chercher, et la réalité rugueuse à étreindre!)
이것은 패배의 선언처럼 읽힌다. 실제로 많은 독자가 그렇게 읽었다. 견자의 꿈이 실패했다. 언어의 연금술은 불가능했다. 지옥의 계절은 끝나고,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다른 독법이 있다. '현실을 포용한다'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또 다른 통찰이라는 해석이다. 실존주의 철학의 언어로 말하면, 이것은 '사실성(facticité)'과의 화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상황, 즉 몸, 과거, 환경이라는 사실성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초월하느냐가 실존적 선택의 문제다. 랭보의 '작별'은 그 사실성과의 어떤 화해이거나, 아니면 화해조차 거부한 채 침묵으로 떠나버리는 세 번째 선택이었다.
어느 쪽이든, 『지옥의 계절』은 실패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기록이다.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이렇게 정직하게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성공의 한 형태다.
9. 초현실주의의 아버지 — 지옥이 낳은 자식들
랭보가 죽고 십수 년이 지난 뒤, 파리에서 새로운 예술 운동이 시작되었다.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이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Manifeste du surréalisme)은 랭보를 명시적으로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선언했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 꿈, 자동기술(écriture automatique)을 통해 이성의 통제 너머에 있는 현실, 즉 '초현실(surréalité)'을 포착하려 했다. 이것은 정확히 랭보의 '감각의 착란'이 겨냥했던 것이다. 이성과 도덕과 사회 규범이 억압하고 있는 것들을 해방시켜, 더 완전한 현실에 도달하는 것.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무의식 이론이 여기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 1900)에서 의식의 검열을 피해 욕망이 표출되는 꿈의 작업을 분석했다. 랭보의 시는 이 꿈의 논리와 흡사하다. 논리적 연결이 끊어지고, 불가능한 이미지들이 병치되며, 억압된 것이 표면으로 솟아오른다.
랭보는 프로이트를 몰랐고, 초현실주의자들을 몰랐다. 그러나 그의 지옥 체험이 두 방향 모두의 예고편이었다. 지옥은 자식들을 낳았다.
10. 지금 여기서 — 열아홉 살의 지옥은 계속된다
랭보의 『지옥의 계절』이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고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은 특정한 삶의 계절에 대한 가장 정직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은 계절.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는 계절. 사랑이 구원인지 파멸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계절. 언어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가, 언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계절. 그 계절은 열아홉 살에만 오지 않는다. 서른에도, 마흔에도, 쉰에도 온다. 다만 그것을 이렇게 쓴 사람이 드물었을 뿐이다.
랭보가 아프리카로 도망친 것은 패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옥을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지옥을 완전히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는 그 기록을 읽으면서, 우리 자신의 지옥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