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소크라테스님, 당신의 질문은 이미 특정한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진리가 보편적이고 영원한 무엇인 것처럼 말이죠. 제가 보기에 진리는 권력관계의 효과입니다. 각 시대와 사회는 자신들의 '진리 체제'를 구성하고, 그것이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결정합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당신은 진리가 상대적이라고 주장하시는 것 같소. 그러나 그 주장 자체는 보편적 진리로 제시되지 않소? 당신의 말이 옳다면, 그것 역시 단지 당신 시대의 권력관계가 만들어낸 효과에 불과한 것 아니오?
푸코 (미소 지으며)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저는 진리의 내용보다 진리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진리는 특정한 담론 절차, 제도적 규칙, 지식의 분류 체계를 통해 생산됩니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들이 어떻게 권력과 맞물려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제 작업의 핵심이죠.
소크라테스 나는 항상 질문을 통해 대화 상대자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의 모순을 드러내려 했소. 그대의 방식은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 같군요. 그러나 당신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질문은 어떻게 접근하오?
푸코 바로 그 지점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후기 작업에서 '자기의 배려'와 '자기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자기 돌봄'의 실천이 어떻게 윤리적 주체 형성에 관여했는지 연구했죠. 사실 당신의 영향이 컸습니다.
소크라테스 흥미롭소. 나에게 철학은 단순한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문제였소.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던 것도 그 때문이오.
푸코 네, 당신의 그 말은 제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자기 관계조차 권력관계에 얽매여 있습니다. 우리의 욕망, 정체성, 자기 인식은 모두 권력/지식 체계에 의해 형성됩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자유는 어디에 있소?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이오?
푸코 자유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권력관계를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하며, 자신을 새롭게 창조해가는 과정이죠. 당신이 말씀하신 '자기 앎'은 고정된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으로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자신을 끊임없이 검토한다... 그것은 내가 추구했던 바요.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정의, 선, 미와 같은 보편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소. 그대는 이러한 가치들조차 권력의 산물로 보시오?
푸코 그러한 가치들이 역사적으로 구성되었다고 보는 것과,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다릅니다. 오히려 그 가치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윤리적 실천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대의 관점은 분명 나의 시대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통찰을 담고 있소. 그러나 끝까지 질문하는 자세는 우리가 공유하는 것 같군요.
푸코 네, 질문하기, 의심하기, 비판하기... 이것은 우리 공통의 태도입니다. 다만 저는 더 이상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적 낙관주의를 완전히 공유하기는 어렵습니다. 진리 자체가 권력의 효과라면, 우리는 진리를 통해 자유를 찾기보다는 진리의 생산 방식을 변화시키는 실천을 모색해야 하니까요.
소크라테스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우리가 2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군요. 내가 아테네의 법정에서 말했듯이, 나는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오. 단지 질문을 통해 탐구할 뿐이지. 그대와의 대화는 나에게도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는군요.
푸코 당신의 '무지의 지혜'는 여전히 강력한 비판적 도구입니다. 어쩌면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권력의 효과에 저항하는 첫 걸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이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