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인물이 시공간을 초월한 어느 카페에 모여 있다. 마르크스는 풍성한 수염을 기른 채 두꺼운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고, 체 게바라는 베레모를 쓴 채 창밖을 응시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지젝은 티셔츠에 수트 재킷을 걸치고 손짓을 크게 하며 말을 이어간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와 책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사회자 오늘은 역사적인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19세기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 20세기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그리고 현대의 좌파 이론가 슬라보예 지젝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첫 주제로, 혁명의 이론과 실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마르크스 선생부터 시작해주시겠습니까?
마르크스 우선 '혁명'이란 단순한 정치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공산당 선언』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입니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놀라울 정도로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그 내부에 자신을 부정할 모순도 품고 있습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사회적 생산 사이의 모순이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체 게바라 마르크스 동지, 존경합니다만, 역사가 그렇게 정해진 길을 따라가지는 않더군요. 저는 쿠바 혁명을 통해 배웠습니다. 혁명은 '객관적 조건'만으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혁명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주체적 행동이 필요합니다. 제 경험상, 농민들이 핵심 혁명 세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도시 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억압받는 모든 민중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지젝 (코를 후비적거리며) 흥미로운 지점이군요. 두 분 다 맞으면서도 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 동지, 당신이 예측한 방식으로 역사가 전개되지 않았죠. 그리고 체 동지, 당신의 게릴라 전략은 물론 쿠바에서는 성공했지만 볼리비아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역설적 성격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너무 성공적이어서 대안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보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생산하는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합니다.
마르크스 (안경을 고쳐 쓰며) 지젝 선생, 당신은 제 이론을 단순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가 기계적으로 전개된다고 주장한 적 없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밝혔듯이,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자신이 선택한 조건 하에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요소 모두 중요합니다.
체 게바라 저는 이론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분석만 하고 있다면, 영원히 행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혁명적 상황이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포코(foco)"" 전략은 바로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소수의 헌신적인 혁명가들이 행동함으로써 대중에게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지젝 (갑자기 흥분하며)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제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소비, 기부, 재활용 등 끊임없는 활동들... 이런 행동들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무언가 하고 있다'는 만족감만 줍니다. 진정한 혁명적 행위는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기존 시스템의 활동에 참여를 거부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 흥미로운 관점입니다만, 결국 중요한 것은 생산관계의 변혁입니다.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생산력을 사회 전체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체 동지가 말한 혁명적 의식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물질적 조건에 의해 형성됩니다.
체 게바라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단순히 경제적 조건의 반영이 아닙니다. 저는 새로운 인간(Hombre Nuevo)의 창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적 인센티브가 아닌 도덕적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혁명은 단순한 권력 이전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변화를 포함해야 합니다.
지젝 (티슈로 코를 닦으며) 여기서 우리는 라캉의 통찰을 빌려올 필요가 있습니다. 욕망은 항상 타자의 욕망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타자가 우리에게 원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체 동지의 '새로운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상적 자아상, 일종의 환상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환상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는 것입니다. 혁명적 과정에서 주체성 형성이 중요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르크스 그렇습니다. 의식의 변화는 중요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기본 전제를 바꾸지 않습니다. 생산관계가 변해야 진정한 의식의 변화도 가능합니다.
체 게바라 (담배를 끄며) 마르크스 동지, 당신 이론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실천 속에서 이론이 수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쿠바에서 우리는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현실에 맞게 이론을 적용했습니다.
지젝 저는 여기서 헤겔의 변증법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이론과 실천,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행동, 이것들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비판적 사고입니다. 자본주의가 가장 강력할 때, 그것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혁명적 행위일 수 있습니다.
사회자 세 분 모두 혁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현대 사회에서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모순은 계속 심화되고 있습니다. 불평등의 증가, 경제 위기의 반복... 이것들은 제가 분석한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혁명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운동은 필연적입니다.
체 게바라 혁명은 항상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불의에 맞서 싸울 용기입니다. 저는 세계 곳곳에서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최고의 혁명가는 진리로 이끄는 위대한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지젝 (머리를 긁적이며) 저는 비관적이면서도 낙관적입니다. 자본주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었고, 모든 저항을 상품화하는 데 능숙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적응력이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 난민 문제, 불평등... 이런 문제들은 자본주의 내에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시도해야 합니다. 베케트의 말처럼,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방식으로 실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