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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수강을 희망하는 분들에게 먼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첫째, 저는 분석 경험이 없는 인문학 연구자입니다. 정신분석은 이론과 실천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직조되는 분야임에도 임상 실천에 대한 경험을 책 속에서 얻는 것이 전부인 제게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둘째, 임상 경험과 별개로 라캉의 이론은 매우 읽기 어렵습니다. 어렵다고 썼지만 사실은 읽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라캉 스스로가 자신의 글(Ecrits)은 읽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글과 이론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임상 분석가들을 대상으로 쓴 것들입니다. 라캉의 글들은 임상 분석가들이 환자들의 증상을 너무 쉽게 진단해 버리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의심하게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고안된 글들입니다.
그래서 라캉의 최측근인 사위인 자크 알렝 밀레조차도 라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난과 질책을 받았지요. 라캉의 유망한 제자였던 르 클레르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고요. 라캉의 글은 이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읽는 우리도 겸허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라캉의 가르침에 주목하면 상징화되지 않고 남는 잔여물(실재)이 중요한 것으로, 상징적 그물망으로 걸러진 건더기(이해된 것)는 쓸모가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잔여물을 얻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불가피하게 라캉의 글을 주요 개념을 통해 도식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후성(apre coup)이 중요함에도 순차적으로 그의 이론이 발전해 간 도정을 걸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라캉의 글을, 그가 정신분석이라는 고유한 영역을 지키기 위해 철학, 언어학, 인류학, 위상학 등을 무자비하게 유린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선 주요 개념들에 대한 입문적 개괄이 필요합니다다. 라캉에 관한 입문 서적이 제법 많지만 이 강의에서는 읽기에 편한 숀 호머의 책(<라깡 읽기> 김서영 옮김, 은행나무, 2014)을 교재로 정했습니다. 그 책을 꼼꼼히 읽되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면서 강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유충현(독립연구자)
중앙대학교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영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대안연구공동체, 다중지성의 정원 등에서 정치학과 정신분석을 접목시키는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유의 새로운 이념들』(공저),『20세기 사상지도』(공저),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2』(공저)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루이비통이 된 푸코』(공역), 『선언』(협동번역), 『봉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