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두 편의 소설이 성공을 거둔 후 1981년부터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초기작을 쓸 때와는 달리 이제부터는 ‘독자’를 의식하며 작품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여전히 그의 작품과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으나 하루키는 별다른 해명 없이 계속 작품을 써내려 갔다. 신작은 하루키스럽다느니 예전과 달라졌다느니 하는 갖가지 세평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계속 썼다. 단편을 다시 고쳐 쓰고, 예전에 언급한 소재를 다시 반복해서 사용하고, 새로운 주제를 다루며 그는 변화해 간다.
버블 시대 일본, 새로운 상황과 여전한 상실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작품론, 독자론, 소설가라는 ‘직업론’에 해당하는 에세이의 모음이다. 이 책을 제외하면 이번 강좌에서 읽는 소설들은 80~9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고도 성장기가 정점에 달해 이른바 ‘버블’이라고 불렸던 시기, 하루키는 이전의 작품 경향을 이어가며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초기의 쥐3부작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댄스 댄스 댄스』는 같은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의 후기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의 주제는 이제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발견되는 새로운 상실과 고통, 그리고 그에 대한 위안이다. 일본 판타지의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든가 완성도 낮은 연애소설로 오해받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같은 작품들을 통해 그는 이제 30대 후반에서 40대에 이르는 자신의 세대의 관점에서 일본의 현실을 살아가는 삶을 담아내려고 한다.
하루키의 궤적을 따라
김응교 선생의 하루키 강독은 하루키 자신이 읽었던 세계 문학, 그리고 하루키 세대의 일본 사회라는 두 개의 배경 속에서 하루키 소설의 주제 의식을 읽어낸다는 것이 매력이다. 그러한 주제 의식이 어떤 인물, 어떤 사건에 담겨 있는지 깊고 세심하게 읽어내는 것은 우리가 왜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그럴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 입담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하루키와 그의 작품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보일 것이며 우리의 보고 읽는 눈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김응교(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고,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풍자시, 약자의 리얼리즘」을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도 시작했다. 1996년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했다. 2012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Sinenmul)로 세상과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