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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블랑쇼는 아직도 낯선 이름이다. 그는 현대의 많은 프랑스 작가와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지만, 평생 모든 공식 활동에 거리를 두고 그저 글쓰기에만 몰두한 작가이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읽기란 무엇인가,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을 맴돌았다. 그 때문에 그의 글은 그의 이름보다 더 낯설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찾고 모색하고 미끄러지고 되돌아가는 움직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파문은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도래하는 문학의 전위, 그 질문의 자리
《문학의 공간》이나 《도래할 책》 등 문학에 대한 블랑쇼의 글에서는 그만큼이나 글쓰기와 문학에 대한 질문에 파고들고 작가적 자의식이 강렬했던 이들이 친구처럼 등장한다. 말라르메, 플로베르, 카프카, 프루스트 등. 이들과 함께 블랑쇼는 글쓰기의 욕망, 문학의 중핵이 어떤 중심점이 아니라 부재, 소멸, 바깥을 향하고 있음을 말한다. 불가능한 시도와 연습일 뿐인 작품들, 그렇지만 읽기를 통해 그 작품은 읽는 나의 생에 의해 쓰여진 책이 되고 우리는 익명의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비인칭의 나, 무위의 나가 된다. 누구보다 멀고 깊이 바라 보았던 이의 얘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그 질문을 던지는 기수가 된다. 우리는 왜 읽고 쓰는 것인가.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읽고 쓰는 비인칭의 ‘우리’
결국 이 강의 앞에 모인 우리는 여전히 읽고 또 쓰고자 하는 주체들이다. 블랑쇼를 만나고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왜 문학을 읽고자 하는가, 문학은 무엇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정말 쓰려고 하는가를 묻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읽고 쓰고 묻는 이들의 자리를, 블랑쇼의 이름으로 마련해 보았다. 8강에 나누어 키워드 중심으로 블랑쇼의 주제와 그의 작가들, 그들을 외접하는 문학적 경험을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강좌다. 본질적 고독에서 출발해 사라짐으로 향하는 블랑쇼의 문학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또 어떤 문학적 경험이 될 수 있을까.
류재화(번역가,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강사)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누벨대학에서 파스칼 키냐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프랑스 문학 및 역사와 문화, 번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파스칼 키냐르의 『심연들』 『세상의 모든 아침』,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달의 이면』 『오늘날의 토테미즘』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보다 듣다 읽다』, 발자크의 『공무원 생리학』 『기자 생리학』, 모리스 블랑쇼의 『우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