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농담 삼아 고전을 ‘아무도 읽지 않지만 모두가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책’이라고 하는데 이 악명 높은 『정신현상학』의 저자와 그의 책들은 그 점에서 조금 특별할 것이다. 중요한 책이라고 이름은 자주 듣지만 정작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니까. 그렇지만 철학의 전선에서 지금도 새로운 논쟁과 영감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불려 등장하는 책이라면 언젠가 진지하게 만나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정신’ 의 이행을 따라
이번 강의는 『정신현상학』의 2부, 소위 ‘정신’ 장을 중심으로 다룬다. 흔히 전체를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할 때는 서문과 서론을 다루고, 입문을 위해 본문을 읽어볼 때는 책의 앞부분인 ‘의식’과 ‘자기의식’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백미는 ‘정신’ 장에 집약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결국 『정신현상학』이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역사적으로 실현된 정신의 발전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서술하는 책이라고 할 때, 그 내용이 압축적으로 제시된 부분이 ‘정신’ 장이기 때문이다. 도래해야 할 더 자유로운 사회의 모습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헤겔의 ‘정신’이 던지는 묵직한 주제와 예리한 통찰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헤겔 전문가의 오랜 연구의 결산
이병창 교수는 이미 『정신현상학』의 앞부분에 대한 해석적 강의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선보이고 책으로 정리해서 펴낸 바 있다. 서문과 서론을 다룬 『영혼의 길을 모순에게 묻다』, 그리고 ‘자기의식’ 장을 해명한 『불행한 의식을 넘어』가 그것이다. 집필과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 교직에서 물러난 후 지난 십여 년간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와 사회문제 등 철학을 확장한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저술을 발표한 강사는 이제 몇 년 만에 다시 『정신현상학』의 주해 강의로 돌아와 40년의 연구를 쉽게 풀어 내려 한다. 난해하지만 헤겔이 그러했듯이 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을 통해 추상적이기 짝이 없는 개념들을 강의실로 끌고 내려와 보자.이병창(철학자)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수학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정신 개념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2011년 2월 명예퇴직을 했다. 이후 현대사상사 연구소 소장으로서 헤겔 철학과 정신 분석학 및 마르크스 주의를 연구하면서 문화 철학 및 영화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