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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카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사르트르가 그에 대한 추모사를 쓰긴 했으나, 1951년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 출간 이후 급격하게 냉랭해진 그들의 관계는 그간의 돈독한 우정이 무색하게 대화도 섞지 않지 않는 정도로 치달았다고 한다. 왜 그들은 적으로 남아야 했는가? 이에 함께 선행되는 질문은, 사르트르와 카뮈를 갈라서게 한 계기와 원인 이전에 그들을 형제에 다름없게 엮어준 요소에 관한 것일 테다. 본 강좌는 사르트르와 카뮈의 삶과 문학에서 그들을 가깝게 했던 이유와 갈라지게 했던 이유에 방점을 두며, 이를 위해 그들 각자의 성장배경·환경에서부터 짚어간다. 구토와 부조리로 대표되는 그들의 시대적 감수성은 유사했지만 1950년대에 이르러 불화와 결렬로 굳어지기까지의 상이한 사르트르와 카뮈의 사회·정치적 입장을 본 강좌는 조목조목 짚어간다.
닮은 듯 다른, 구토와 부조리
사르트르와 카뮈를 각각 대표하는 개념으로서 구토와 부조리. 이것들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각각 작품 『구토』와 『시지프 신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유사한 시대적 감수성, ‘구토’와 ‘부조리’의 극복은 사르트르에겐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카뮈에겐 세계를 껴안으며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것에 있다. 구토와 부조리 모두 우리가 늘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일상에 파묻힌 우리를 찾아온다. 참으로 닮아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두 개념의 차이는 나와 대상과의 관계와 치유 방법 면에서 갈라진다. 구토와 부조리라는 닮은 듯 다른 두 개념의 차이를 2, 3강에 걸쳐 알아본다.
불화의 지점, 사회를 바라보는 상이한 시선과 해석
사르트르와 카뮈는 자신들이 위치해 있는 현실로부터 등 돌린 적이 없었고, 이는 여러 저작을 통해 확인가능하다. 정치·사회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차이와 불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은 ‘나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이해방식’과 ‘폭력에 대한 정당화 여부’에서다. 사르트르는 나-타자-집단의 관계를 갈등이나 투쟁으로 이해하고 공동체 형성의 원리로 ‘폭력’을 인정한다. 이와 달리 카뮈는 타자를 나의 신이나 낙원으로 이야기하고 관계에 대해서도 화해나 공존을 내세우며, 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다. 유토피아를 고대하는 혁명 앞에서도 사르트르와 카뮈는 각각 효율성과 도덕성을 우선시하며 입장을 달리한다. 그들의 불화와 결렬을 이해하는 대타관을 사르트르의 『무덤 없는 주검』, 『톱니바퀴』, 카뮈의 『페스트』, 『정의의 사람들』을 통해 살피며 총 네 강(4~7)에 걸쳐 알아본다.그들을 화해시키자, 우리가
“우리를 서로 가깝게 만들어 준 것은 많았고, 우리를 갈라놓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얼마 안 되는 것도 여전히 지나치게 많은 모양입니다.” 사르트르가 카뮈에게 보낸 서한의 한 대목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르트르와 카뮈의 ‘친구-적’ 관계를 비교해보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들은 이데올로기의 충돌과 대립이 거셌던 20세기 초중반을 살며 말 그대로 작은 차이를 가지고, 보다 나은 사회의 건설과 그것의 토대를 수용하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입장에서의 유의미한 논쟁을 벌였다. 사르트르-카뮈의 ‘친구-적’ 사이 그리고 차이를 현대에 다시 위치시키는 좋은 방법은 그들을 대립 구도에 세워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연적으로서 융합하고 변증법적으로 매개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를 둘러싼 치열한 사유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떠올리자. 사르트르와 카뮈, 카뮈와 사르트르를 다시금 화해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현대의 우리다.
변광배(불문학자)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동 대학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몽펠리에 3대학에서 「장 폴 사르트르의 극작품과 소설에 나타난 폭력의 문제」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사르트르 전문가로 『존재와 무』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 등 사르트르와 실존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고, 주요 저서를 번역해 왔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대우교수를 역임했고, 지금은 프랑스인문학연구모임 ‘시지프’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