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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라는 문제의식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가짜 뉴스는 누가 무슨 의도로 만들어내는 것일까. 가짜나 거짓, 기만의 구별은 분명한가. 뚜렷한 목적도 없이 그저 재미로 만들어낸 장난과 악의적인 정치적 의도로 특정한 사실만을 부각시키는 보도 중 어느 것이 거짓말에 가까운 것일까. 거짓말은 친숙한 일상사이고 이 세계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정작 진지하게 질문을 해 보면 거짓말을 정확히 규정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궁금해진다. 철학은 거짓말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줄까.
아렌트와 데리다
우리의 첫 안내자는 아렌트와 데리다, 정확히 말하면 아렌트를 읽는 데리다이다. 아렌트는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노골적이고 명백한 거짓말, 월남전을 화두로 정치에서의 거짓말에 대해 고찰한다. 아렌트는 왜 정치가 거짓말에 특화된 영역인지를 물었고, 이 질문과 그에 대한 아렌트의 대답은,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동시에 한계를 드러낸다. 데리다가 우리와 함께 출발하고자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서다. 아렌트는 정치가 참과 거짓, 형이상학적인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취약한 사실적인 진리의 영역, 견해에 기반을 둔 행위라는 것을 밝힌다. 그럼으로써 아렌트는 어떻게 자기기만이 정치를 지배할 수 있는지 지적하고 민주적인 참여를 통해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희망을 찾으려 한다. 데리다는 아렌트의 분석에 존경을 표하면서, 그것이 충분히 철저한 분석이 아니며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더 분명치 않을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역사를 가로질러 현재로 돌아오다
아렌트와 데리다와의 대화는, 결국 정말로 우리가 진실을 원하고 거짓을 거부하는지, 진실과 거짓은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게 한다. 그 질문이 우리에게 짧은 철학적 여정을 떠나게 만드는 힘이 된다. 하라리와 함께 인류의 긴 진화의 역사 속에서 거짓말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살피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거짓말도 능력이나 기술인지를 묻는다. 아우구스투스는 속이려는 의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루소와 함께 기만의 해악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니체는 짐작도 하기 어려운 급진적인 반문을 통해 그 모든 생각들을 다시 전제부터 뒤집어 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아렌트와 데리다를 읽으며, 그 모든 텍스트를 읽은 과정이 대화이며 사유에의 초대임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대답을 내놓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닐까.
이국배(숭실대 초빙교수)
미국 뉴욕대(NYU) 박사과정에서 문화와 미디어 이론을 공부하고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소셜이노베이션융합전공으로 정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KBS 방송문화연구소 미국 주재 연구원과 KBS America 보도국장, 편성제작국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숭실대학교 베어드교양대학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과학기술과 민주주의, 미디어와 정보철학, 독일 니힐니즘의 정치사상 등을 주제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