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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과 잡종의 글쓰기를 위한'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싼 다양한 사유와 철학들, 그리고 그 이후를 시도하고 감행하는 이론적 실천들 사이에서, 우리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어떤 선택 아닌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우리는 다양한 지형들 속에서 어떤 아포리아(들)에 봉착한 듯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다시금 이론을, 그리고 이론 이후를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에겐 이러한 이론 이후의 문제가 매우 절실한 것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질문을 대전제로 삼아, 서구 사상가의 이론이나 철학 담론들에 대한 단순한 소개와 해설을 넘어, 우리의 현재적 사유를 구성하고 있는 조건들과 방향들을 살펴보는 시간을갖기 위해, 정치 · 철학과 미학, 문학과 예술 등의 분과를 가로지르며, 아니 오히려 그러한 분과들의 분류법 자체를 문제 삼으며, 우리는 『사유의 악보』를 함께 읽을 것이다.
따라서 이 강의는 『사유의 악보』를 읽는 철학적이며 음악적인 일종의 매뉴얼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곧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글들이 작성될 수 있었던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조건과 과정과 미래를 함께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따라서 우리가 함께하는 글쓰기는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대답을 구해보자.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
“하나의 서곡over과 하나의 종곡finale, 그리고 13개의 악장들movements과 8개의 변주곡들variations로 이루어진 하나의 악보이다. 그러나 이 악보는 굳이 순차적인 질서로 연주될 필요도 없고 하나의 주제 악구로 통합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산개되어 있는 주제들과 음표들 사이에서 독자들은 하나의 길을 발견하고 또한 그 하나의 길을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악보들을 통해서 하나의 ‘음악’이, 또는 몇 개의 서로 다른 변주들이 탄생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의미에서만 유일한 책이다. 부디 이 매뉴얼이 많은 이들이 스스로 이론을 ‘사용’하고 사유를 ‘구동’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문자들과 음표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도대체 사유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묻고 그 사유 자체의 ‘사유 가능성’을 제사하고 실험하는 하나의 방편, 하나의 허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차라리 더 크다.” ㅡ 최정우, 『사유의 악보』 중
최정우(작곡가, 비평가, 『자음과모음』 편집위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불어불문학과에서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시즘 문학과 유물론적 철학'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 『세계의문학』에 비평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연극과 무용 등 무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2년 결성한 3인조 음악 집단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를 이끌면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2003년 박상륭 원작의 연극 <평심>을 시작으로, 여러 연극음악과 무용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였다. 데이비드 헤어의 희곡 『철로The Permanent Way』를 번역하고, 무용 <육식주의자들>의 대본을 썼으며, 현재 계간지 『자음과모음』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호雅號'를 '아호我號'로 오해하고 오독하여 오랫동안 필명으로 '람혼襤魂'이라는 호를 사용했고 또 사용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