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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스피노자, 니체를 연구하던 대학교수 질 들뢰즈와 현실개입적 정신분석의 활동가이던 펠릭스 가타리가 의기투합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보다 크다고, 네가 무엇을 원하든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무의식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즐거운 분열
우리는 억압 없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동시에 가족과 국가에 의해 길들여지고 훈육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고백한다. 가족의 품에 안기고 국가의 보호를 누리는 삶처럼 편안한 것은 없을 듯하다. 무의식의 위대한 발견자 프로이트는 가족과 국가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욕망의 대상이라고 가르쳤다. 정말 그럴까? 들뢰즈와 가타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무의식은 우리를 담아 가두는 굴레가 아니라 어떤 굴레든 그 너머로 빠져나가는 ‘불온한’ 능력이다. 때문에 가족과 국가라는 환상에 갇혀 있는 한, 우리는 불운한 분열을 맛보며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즐거운 분열, 그것은 무의식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폭발하는 회로를 발견하는 일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J. Peter Siriprakorn at commons.flickr.com
https://flic.kr/p/qdKqg
정신분석의 창안자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발견하자마자 꽁꽁 묶어 봉인해 버렸다. 우리의 욕망은 엄마와 아빠에 대한 불길하고 끔찍한 환상 속에 갇혀 버렸고, 사회는 이러한 가족극장으로 가득 채워졌다. ‘복종하라, 가족을 사랑하라!’를 실천하게 하고 ‘엄마-아빠-나’라는 가족의 영토를 운명으로 삼고 애착하는 삶을 강요한다. 그렇게 우리를 영원한 예속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펠릭스 가타리(Guattari Félix, 193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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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가타리의 분자혁명
결박된 욕망의 사슬을 폭파하라, 네 자신의 욕망을 해방시켜라! 상품광고처럼 들리는 이런 주문보다 더 큰 헛소리는 없다. 도대체 무엇을 풀어놓고 어떻게 자유를 찾을 것인가? 들뢰즈와 가타리의 분자혁명은 내키는 대로 맘대로 살아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 비-파시스트적 삶을 창안하고 살아가기 위해 좀 더 신중하고 앎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분열분석은 그 길을 찾아가는 지도가 아니라 지도를 그려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분열증'이라 명명된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안티 오이디푸스』는 가족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항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적 기획이자 정치적 선언이다. 인류의 오랜 환상인 가족과 국가를 타파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르고’ ‘낯선’ 미래를 상상하고 구성하는 적극적 비전이기 때문이다. 이 강좌는 그 잠재성과 가능성을 탐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최진석(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창과 교수)
수유너머104 회원. 러시아인문학대학교 문화학 박사. 정통을 벗어난 ‘이단의’ 지식, ‘잡종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잡학다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이 공부길에서 수유너머의 친구들이 (불)친절한 동반자들임에 늘 감사해 한다. 그렉 램버트의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미하일 리클린의 『해체와 파괴』를 번역했고, 『불온한 인문학』 등을 함께 썼다. 이화여자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