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문학 평론가 중에서 하루키를 폄하한 이는 적지 않았다. 역사의식이나 시대적 책임감의 부재, 수백만 부가 팔릴 정도의 대중성, 감각적이지만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비유와 상징, 그러니까 깊이가 없는 작가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반세기 가까운 작품활동을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것이 단편적인 이해이자 오해였음을 증명해 왔다. 그의 작품의 변화 과정, 그의 생각을 드러낸 산문들,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그의 문학관,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함으로써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떤 작가인지 우리는 그 전모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루키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하루키는 큰 작가이다. 독서를 통해 형성된 그의 문학 수업은 니체,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카버 등 대작가들의 세계에서 샘솟아 오른 문학적 자양분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가 글을 쓰기로 불현 듯 마음 먹었을 때, 그건 자신의 세대의 상실감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무의식적인 모험이었으며, 작가적 자의식의 성장을 통해 역사와 현실에 대해 생각하고 발언하려는 여정의 족적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오래도록 하루키를 읽어왔지만, 역설적으로 하루키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루키는 다시 읽어야 하는 작가이다.
일본의 작가 하루키, 세계 문학 속의 하루키
강사 김응교 교수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학하며 비교문학을 전공했고 작가이자 비평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이다. 그는 무엇보다 하루키의 세대적 자의식,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부정과 단절에서 출발해 전후의 68년 세대, 1970년대의 고도 성장기, 극우의 역사 망각과 왜곡을 거쳐 일본인들의 일상적 무의식을 지배하는 두려움에 이르기까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왔음을 밝혀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물음이, 하루키가 읽어온 작가와 작품들과의 공명을 통해 형성되어 왔음이 드러난다. 우리는 이 탁월한 안내자 덕분에 하루키를 마치 처음 만나는 듯, 깊은 울림의 독서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응교(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고,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풍자시, 약자의 리얼리즘」을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도 시작했다. 1996년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했다. 2012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Sinenmul)로 세상과 소통한다.
시집 『씨앗/통조림』과 평론집『그늘-문학과 숨은 신』 『한일쿨투라』, 『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 『시인 신동엽』, 『이찬과 한국근대문학』, 『韓國現代詩の魅惑』(東京:新幹社、2007), 예술문학기행 『천년 동안만』, 시인론 『신동엽』, 장편실명소설 『조국』 등을 냈다. 번역서는 다니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장편소설 『다시 오는 봄』, 『어둠의 아이들』, 윤건차 사상집 『고착된 사상의 현대사』, 윤건차 시집 『겨울숲』, 오스기 사카에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엘던 라드 『부활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일본어로 번역한 고은 시선집 『いま、君に詩が來たのか: 高銀詩選集』(사가와 아키 공역, 東京: 藤原書店、20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