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김수영의 첫 독자이자 대필자, 김현경
“그 양반은 시를 쓰면, 내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건, 빨래를 하고 있건 상관없어요.
불러들여서 책상 옆에 앉히고 초고를 줍니다. 좋아가지고.”
1942년, 문학을 다루는 스승과 제자라는 인연으로 처음 만난 김수영과 김현경은 1950년 결혼하며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까다롭고 예민했던 김수영은 백지에 시를 썼는데, 시를 완성하면 신이 나 김현경에게 원고지로 옮겨 적기를 시키고 항상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김현경은 김수영의 작품을 가장 먼저 읽는 독자이자 대필자, 그의 시 세계의 동반자로 인생을 함께했다. 그의 사후에 유고(遺稿)에 번호를 매겨 정리한 것도 김현경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기억을 통해 듣는 김수영의 삶과 문학은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김수영의 인생이 녹아든 시 세계
“시 한 편 쓰는데 그렇게 고뇌가 많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똑같은 시를 쓰지 않습니다.
똑같은 이미지나 똑같은 에스프리를 쓰지 않고. 꼭 자기를 한 꺼풀 벗겨낸,
조금 더 업그레이드 된 걸 자기가 찾는 거예요.”
“그는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인데, 모든 상황이 제압을 당하고 있잖아요.
인생을 비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 시의 바닥은 어둡습니다. 굉장히 외로워하고요. 고뇌도 깊고.”
김현경은 찬찬히 기억을 더듬으며, 김수영의 인생이 어떻게 그의 시 세계에 녹아들었는지 짚어간다. 우리는 이 강좌를 통해 많은 시인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고물개질’의 뜻에서부터 김수영이 다양한 동서양의 고전을 섭렵하고 번역자로서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일화, 그리고 시대의 굴곡마다 변화한 김수영의 정신적 지향점까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김현경(김수영 시인 부인)
1927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났다. 경성여자보통학교(현 덕수초등학교)와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정지용 시인에게 시경(詩經)을 배우며 당시 ‘일본 전위파’ 문학과 프랑스 문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김수영과 결혼해 장남 준(雋)과 차남 우(瑀)를 두었다. 신문로, 동부이촌동 등에서 의상실을 경영했으며, 이후에는 미술 컬렉터 및 디렉터로 활동했다. 2013년 현재는 김수영의 생전 집필실을 집에 재현해두고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며 김수영 시인의 아내이자 독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