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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정치철학들뢰즈의 삶정치론

강좌정보
언제부터인가 ‘삶정치’라는 말이 이 시대의 정치적 삶을 설명하는 주요 화두의 하나가 되었다. 본 강좌에서는 헤러웨이, 푸코, 마르크스, 들뢰즈, 베르그송 등을 통해 우리네 삶의 특히 부적절한 타자들을 위한 ‘삶정치’를 살펴본다.

부적절한 타자들을 위한 삶정치



삶정치의 개념


삶정치(biopolitics)라는 개념 혹은 용어는 푸코에 의해 창안되었으며, 이후 네그리 등의 이론가들에 의해서 변형되어 사용된다. 그 이전 시대에 속하는 마르크스에게는 물론 삶정치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 및 그 역사적 전개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은 푸코와 네그리가 말하는 삶정치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권력이 사회적 삶에 스며들어 삶권력biopower이 되는 과정-의 포착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일단 삶정치란 근대적 의미의 정치와 대립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이는 두 가지 측면-권력의 성격과 그 지배의 형태-에서 설명될 수 있다.

 

1) 근대의 정치에서는 정치적 적대가 권력 대 권력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권력은 특정의 분할된 공간을, 특정의 진영을 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특정의 공간 혹은 진영이 나머지 공간 혹은 진영을 지배하는 것이다.


2) 삶정치에서는 정치적 적대가 삶(의 활력) 대 삶권력(biopower)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근대적 권력은 삶권력으로 변형된다. 삶권력은 사회적 삶 전체에 스며들어 장(場)의 형태로 지배한다. 삶의 활력은 이 장을 뚫고 나가서 새로운 존재를 구축하는 창조적 힘으로서 표현된다.



마르크스의 삶과 노동


‘삶’이란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면 마르크스에게는 어떻게 이해되는가? ‘삶’(Leben)이라는 단어는 마르크스에게 어떤 의미심장한 개념을 전달하는 것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느 맥락에서나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식으로 사용되지 않고 맥락에 따라 의미가 변한다.

이는 마르크스 같은 이에게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인간의 삶이 역사적 조건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규정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처한 시대는 자본이 삶을 포섭해 들어오는 시대이다.


따라서 자본의 논리를 분석하는 데 치중하는 그의 성숙기 저작들에서는 ‘노동’ 혹은 ‘산 노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삶’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보면 알겠지만 이러한 단어 사용의 유무가 맑스의 견해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나타내줄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푸코의 삶권력


삶권력이라는 개념이 푸코의 저서에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976년 《앎의 의지》에서이고, 처음으로 출현하는 곳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1976년 3월 17일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이다. 이 강의는 마우로 베르타니와 알렉산드로 폰타나의 편집·감수 하에 1997년에 출간되었고 이듬해에 같은 제목으로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인종들 간의 전쟁”과 역사적인 담론 내에서 전쟁의 역할에 전적으로 할애된 본 강의에서 푸코는 다음과 같이 적어 넣고 있다. “정치권력 하에서 포효하고 있고 기능하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또 우선적으로 호전적인 관계이다.” 여기서 권력은 힘의 관계로 구상되고 있고 푸코의 분석 도식은 전략의 질서에서 차용되고 있다. 반면에 전쟁 개념은 권력 문제의 분석의 격자로서 사용되기에는 불충분한 점이 있다.

요컨대 전쟁은 권력 메커니즘의 복잡성을 파악하기에는 너무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정면충돌적인 모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푸코는 분석을 수행하며 이론적인 변화를 준다. 이와 같은 이론적 수정을 통해 푸코는 권력의 분석학을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복합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는 통치성gouvernementalite 개념통해 분석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베르그송의 삶정치학


베르그송의 이론에서 삶정치학의 정신에 가까운 것은 닫힌 사회의 개념이다. 열림과 닫힘의 대립은 항구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이며 베르그송적인 이항대립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속-공간, 질-양, 자유-필연, 기억-지각, 정신-신체, 생명-물질, 잠재성과 현실성, 긴장-이완, 상승운동-하강운동, 열린 사회-닫힌 사회그것이다.

열림과 닫힘의 개념쌍은 <창조적 진화>에서 처음 등장했다. 진화의 여러 노선에서 마비와 운동, 무의식과 의식이 이에 해당하며 본능-지성, 식물-동물, 동물-인간으로의 분기는 그 현시들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개념쌍은 생물학적 기원을 갖는다.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닫힌 사회는 생물학적 필연성에 의해 작동하는 체계이고 열린 사회는 이를 넘어서는 초인적 노력을 예고한다. 생물학적 필연성은 다윈의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기계론적 세계인 것이다.



해러웨이


해러웨이는 현대 생물학에 의해 ‘인간’‘동물’맺게 된 ‘친족관계’kinship'를 다른 세계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인간의 ‘동물화’를 기뻐한다면 기뻐할 사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중하나다.

페미니스트이며 생물학에 대한 사랑에 빠져 있고 SF 소설을 탐독하며 영장류학의 역사와 생명특허 및 유전체 연구를 흥미롭게 살펴보는 그의 지적 성향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연구분야 및 결과물 역시 전통적인 분류체계에 잘 들어맞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그의 사유와 삶이 ‘분류에 대한 저항’추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긴장감은 해러웨이의 글뿐만 아니라 개인적 삶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연구와 삶은 ‘지식인이라는 고병’이 간혹 나타내는 증상처럼 비판적 분석이 우선하고 그에 따라 경계를 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기보다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반려자들과 책임 있는response-able 관계를 맺기 위한 탐구의 과정에서 걷게 된 길이었을 것 같다. 이 때 책임 있는 관계란 인간과 비-인간 할 것 없이 관계를 맺은 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에 대해 응답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하며, 그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관계, 그리고 역사가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기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세상’은 유토피아utopia, 즉 무-장소가 아니라 ‘여기’에서 열리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해러웨이의 말을 빌면 “나는 일상을 일반화하기보다는 일상과 맞붙어 씨름하는 과정에서 세상이 되는become worldly 법을 배운다고 생각한다. 나는 흙의 피조물이지 하늘의 피조물이 아니다.”

강사소개
교재소개
- 참고문헌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푸코: 『성의 역사1 앎의 의지』, 도서출판 나남, 1997.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도서출판 동문선, 1998.
· 베르그송: 『베르그손, 지속과 생명의 형이상학』, 이룸
· 아감벤: 『호모 사케르』, 새물결,
· 해러웨이: 『한 장의 잎사귀처럼』, 갈무리, 2005
· 들뢰즈: 「통제사회에 대한 후기」
· 네그리: 조정환 지음,『제국기계비판』, 갈무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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