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함의 이데아에 작은 반격을 가하다.
철학자의 정치 평론이란 어떤 것일까? 현학적이고 평소 현실과는 유리된 언어만을 사용한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들만 가득할까? 그렇지 않음을 ‘탈주의 철학자’ 이진경이 보여준다.
그는 먼저 우리 사회의 근 몇 년간을 ‘뻔뻔함이 지배하는 사회’, ‘아무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후안무치의 사회’ 라고 과감히 규정하고, 비판의 메스를 꺼내든다. 지난 정권과 이 사회를 지배한 것은 위선조차도 사라진 뻔뻔한 시대와 그로 인한 피로감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단순한 정권 교체의 후유증이 아닌 이 사회에 만연한 ‘닥치고 경제’의 논리들이 이 사회 내의 구성원들을 피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자이자 강연자인 이진경의 청진기에 의하면 박정희의 시대가 ‘위선의 체제’라면, 이명박의 시대는 ‘뻔뻔함의 체제’를 완강하게 굳힌 시대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로 대표되는 배금주의는 우리 안에 스며든 뻔뻔함을 보다 강화시키고, 이제 이 나빠진 상황은 무감함과 둔감함을 낳게 하였다. 요약하자면 몰지각함이 완연한 세태가 된 것이다. 이것이 이 철학자로 하여금 펜을 들게 한 원동력이었다.
여기서 이진경 교수는 진단을 내놓는다. 이 완강한 지배세력에 대항하고 불화하기 위해서는 작은 단위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희망버스, 타워크레인 고공 농성 등으로 대표되는 단위별 저항 같은 일들과 흡사하다 하겠다. 이 무시할 수 없는 한 줌의 세력들이 바꿔가는 세상의 일면들, 이것을 그는 ‘한 줌의 정치’라고 명명한다.
한 줌도 안되는 것들이 지배적인 것과 대결하며 만드는 이 거리를, 그 간극을 만드는 한 줌에 지나지 않는 것들의 존재와 활동을 나는 ‘한 줌의 정치’라고 명명하고 싶다.
_ 책 프롤로그에서
이진경(사회학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관한 공간사회학적 연구: 근대적 주체의 생산과 관련하여」라는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오랫동안 공부하는 이들의 ‘코뮨’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자본주의 외부의 삶과 사유를 시도하며, 근대성에 대한 비판 연구를 계속해 온 활동적인 사회학자이다. 87년 발표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로 명성을 얻은 후, ‘이진경’이라는 필명으로 ‘탈근대성’과 ‘코뮨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또한 박태호라는 이름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