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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근현대철학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 잊을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것

강좌정보
이 강좌는 들추기가 쉽지 않은 고통에 대한 기억을 주제로 한다. 아우슈비츠. 인간이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폭력과 고통의 역사 가 있는 곳. 한나 아렌트는 그 고통의 역사를 자신의 철학적 주제로 삼았었다. 이 강좌는 잊을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바로 그 장면을 현대철학자들의 눈으로 들여다 본다.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에 있었던 유대인 수용소의 이름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장소의 이름이 아니다. 그 이름은 아무 것도 지시하지 않는, 지시할 수 없는 텅 빈 이름이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공허의 어둠 속에서, 바닥 없는 절대 침묵 속에서, 그러나 이 이름은 아무 것도 대답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들을 질문한다. 아우슈비츠는 어디일까, 아우슈비츠는 누가 (무엇이) 만들었나, 아우슈비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그 안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누구이고, 살아서 돌아 온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했고 또 해야만 했는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은 증언을 했다. 그런데 증언이란 무엇일까? 증언은 야누스의 얼굴을 갖는다. 하나는 진실의 담론이다. 그것은 진실을 말하려 한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하려고 한다. 그러나 증언은 동시에 거짓말의 담론이다. 그것은 진실을 피하려 한다, 모든 것을 다 잊으려 한다. 그러나 진실이든 거짓이든, 기억이든 망각이든, 증언의 목적은 하나다. 증언은 상처를 통과해서 다시 삶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증언은, 카네티가 말했듯, 상처를 허파로 바꾸려는 생존의 담론이다. 그러나 아도르노도 아감벤도 말하듯, 잊을 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는 그런 상처가 있다. 이 상처는 통과할 수 있는 걸까, 허파가 되어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걸까? 돌아온 사람들은, 끝없이 증언을 했던 사람들은, 그런데 왜 다시 그 상처 속으로, 절대 침묵 속으로, 아우슈비츠라는 텅 빈 이름 속으로 다시 투신하고 말았을까?

이제 또 하나의 담론이 남는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돌아올 수 있었던 이들도, 모두가 아카이브와 기념비라는 과거의 카타콤베 속으로 사라진 지금 다시 아우슈비츠를 기억하려는‘그 이후의 담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텅 빈 이름 아우슈비츠는 오늘에도 여전히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는 건 물음들뿐이다: 아우슈비츠는 어디인가? 아우슈비츠는 무엇인가? 아우슈비츠는 누가 만들었는가? 그들은 지금도 아우슈비츠를 짓고 있는 건 아닐까? 벤야민이 말하듯, ‘적들은 지금도 승리하고’ 있으며 그 승리 앞에서 산자들도 또 ‘죽은 자들마저도 안전하지 못한 건’ 아닐까? 이 강의는 이런 질문들과 만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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