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개요
조선 후기는 성리학이 점차 관념화되고 형식주의로 굳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모순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등장한 것이 바로 실학과 동학이다. 이 강좌는 김교빈 교수의 <한국 지성과의 산책> 시리즈 두 번째로, 조선 후기 반성리학적 입장에서 출발한 실학과 동학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청담 이중환,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수운 최제우로 이어지는 사상가들의 궤적을 따라가며, 당대의 역사적 배경과 그들의 사유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살펴본다. 실생활의 개선을 추구한 실학과 종교적 평등을 외친 동학이라는 두 갈래의 사상이 각각 어떤 방식으로 조선 사회의 변화를 모색했는지 비교하며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철학의 독자적 전개 과정을 확인하는 동시에, 현실과 괴리된 이념에 맞서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던 지식인들의 용기와 통찰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 강의특징
이 강좌는 단순히 사상가들의 이론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1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조선 후기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실학과 동학이 어떻게 태동하고 발전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당파 싸움, 세도 정치, 외세의 침탈이라는 역사적 격변기에 지식인들이 품었던 고민과 실천을 구체적으로 짚어낸다.
특히 실학의 두 갈래인 이용후생학파와 실사구시학파의 특징을 명확히 구분하고, 이중환의 『택리지』,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소설들, 정약용의 방대한 저술과 개혁안을 실제 작품과 연결해 설명한다. 또한 동학의 인내천 사상이 갑오농민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추적하며, 실학과 동학이라는 두 사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평등과 개혁을 추구했음을 비교 분석한다.
김교빈 교수는 34년간 한국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복잡한 철학 개념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며, 역사적 사건과 사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엮어 한국 철학의 윤곽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 추천대상
한국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사람이라면 이 강좌가 훌륭한 출발점이 된다. 조선시대 철학이 성리학으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실학과 동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의 세계가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역사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정약용, 박지원 같은 인물을 접했지만 그들의 사상적 깊이까지는 알지 못했던 사람, 『택리지』나 『열하일기』 같은 고전을 읽어보고 싶지만 배경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에게도 적합하다.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사상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싶은 사람, 현대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그 뿌리가 되는 조선 후기 사상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권한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거나 교양 수업을 듣는 학생, 인문 교사나 강사로서 한국 철학에 대한 체계적 이해가 필요한 사람, 그리고 평생학습 차원에서 우리 사상의 전통을 탐구하려는 모든 이에게 유익하다.
■ 수강팁
이 강좌는 <한국 지성과의 산책 Ⅰ>의 후속이지만, 독립적으로 수강해도 무리가 없다. 다만 첫 번째 시리즈에서 다룬 성리학과 양명학의 기본 개념을 알고 있다면 실학의 등장 배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1강에서는 조선 후기 사상 전체의 지형을 조감하므로 집중해서 들으며 큰 그림을 그려두는 것이 좋다. 실학과 동학, 도학파와 강화학파 등의 개념이 처음에는 낯설 수 있으나, 이후 강의에서 구체적 인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되니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
각 강의에서 다루는 인물의 대표 저서를 미리 찾아보거나 간단한 요약본이라도 읽어보면 강의 내용이 훨씬 생생하게 다가온다. 『택리지』의 지리 인식, 『열하일기』의 문명 비평, 정약용의 토지 개혁론 같은 주제는 현대적 관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므로 메모하며 듣기를 권한다.
강의록이 제공되므로 한 번 들을 때 모든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전체 흐름을 파악한 뒤 강의록을 참고해 복습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특히 정약용이나 최제우처럼 사상이 복잡한 인물은 여러 번 반복해서 듣는 것도 좋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생들은 한국 철학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정약용이 단순한 실학자가 아니라 평등 지향적 신분관을 가진 선구자였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반응이 많다. 정인보가 "조선사 연구는 곧 다산 연구"라고 한 이유를 비로소 이해했다는 감상도 있다.
특히 박지원의 소설들이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북학론과 이용후생 사상의 구체적 표현이었다는 설명에 감탄하는 이들이 많다. 이중환의 『택리지』가 금서로 지정될 만큼 체제 비판적이었다는 사실, 그것이 역설적으로 일제시대에 악용되었다는 사실도 충격적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이 왜 그토록 많은 민중을 움직였는지, 실학과 동학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평등을 추구했다는 비교 분석도 명쾌하다는 평이다. 역사 드라마를 보며 궁금했던 부분들이 해소되었다는 후기, 회사 일로 지쳐 있을 때 정약용의 삶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감상도 인상적이다.
다만 일부 수강생은 사전 지식 없이 듣기에는 용어가 생소하고 내용이 방대하다고 느낀다. 성기호설, 경세치용학파 같은 개념이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강의 속도가 빠르다는 의견도 있으므로, 필요하다면 일시정지하며 천천히 듣거나 강의록을 함께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 마치며
철학자의 사유는 언제나 그가 살았던 시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조선 후기의 혼란은 단순히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기존 사상 체계가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지적 위기이기도 했다. 이중환, 박지원, 정약용은 실학이라는 이름으로 현실 개혁의 구체적 방법을 모색했고, 최제우는 동학을 통해 종교적·정신적 각성을 촉구했다.
이들의 사상은 당대에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성찰하는 데도 여전히 유효하다. 관념에 갇히지 않고 실생활의 문제를 직시하는 태도, 외부의 선진 문물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려는 개방성, 신분과 계급을 넘어 모든 인간의 평등을 지향하는 정신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다.
김교빈 교수의 안내를 따라 이 지성사의 여정을 함께하다 보면, 한국 철학이 결코 중국 철학의 아류가 아니라 우리 현실에 뿌리내린 독자적 사유 체계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고뇌와 통찰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김교빈(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