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조선 후기,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대가들의 사유와 실천
많은 이들에게 낯설게 들리는 ‘한국 철학’.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도 고유의 사유체계가 존재해왔다는 사실! 중국을 비롯한 외부의 철학들을 주체적으로 변용하여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던 한국 철학자들을 김교빈 교수가 재조명한다. 특히 이 강좌에서는 조선 후기, 경직되어가는 성리학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혼란에 맞서고자 했던 실학과 동학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실생활에 주목한 지식인들의 개혁적 사상, 실학
관념·형식주의로 향해가는 성리학에 대해, 한국 유학 내부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 비판적 시각은 ‘실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낸다. 17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 학파를 형성하고, 19세기 초반까지 그 명맥을 이어갔던 실학. 이 강좌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실학에 기여했던 청담 이중환, 연암 박지원, 그리고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을 짚어본다.
일찍이 당파 싸움으로 고초를 겪은 이중환은 당대의 신분제와 각종 제도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문학적으로 조선 팔도를 분석한 역작 『택리지』를 완성했다. 마찬가지로 당쟁으로 인한 압박 속에서도 공고한 북벌론과 성리학의 허위의식에 맞서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이기를 주장한 박지원. 박지원의 실학사상은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그의 소설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편, 정약용은 개방적인 태도로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이어가며 실학의 갈래들을 집대성하였다. 수원 화성과 기중기의 설계로도 유명한 정약용은, 후대 학자들의 교육과 집필에 헌신하여 많은 이들이 시대정신으로 깨어있도록 이바지했다.
서학에 맞서 만인의 평등을 외친 우리의 종교, 동학
그러나 안타깝게도 19세기로 넘어가는 조선의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계속된 세도 정치로 어려워진 정치,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폭력적인 외세의 압박, 상인 계층에게 편중되는 부로 일반 백성들의 삶은 양극화되고 피폐해졌다. 자연스럽게 백성들 사이에서는 괴로운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종교적인 사상과 의식들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최제우 또한 우매한 백성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고자 동학(천도교)를 창시하였다.
이때 동학의 흥미로운 점은 실학과는 반대의 입장에서 백성들의 삶을 개선시키려고 했다는 점이다. 실학이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외국의 선진 문물과 사상을 수용하여 현실을 바꾸려 했다면, 동학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학’에 맞서 기존의 종교들로부터 우리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평등’을 실현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동학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동학농민운동의 큰 동력이자 반성리학적인 민중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철학자들의 사유는 언제나 당대의 역사적 흐름과 사회 문제를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 김교빈 교수는 당대의 역사적 사건과 실학과 동학의 사상을 흥미롭게 엮어감으로써, 자연스럽게 한국 철학의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열하일기』, 『택리지』, 「사발통문」)
김교빈(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이사장)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양철학 및 한국철학을 주제로 연구 및 집필 활동을 활발히 해 왔으며,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인문콘텐츠학회 회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 민족의학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호서대학교 교수로 34년을 재직 후 정년퇴임하고 현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