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에 대한 오해와 진실
워즈워스, 블레이크, 셸리…. 자연과 유토피아를 노래한 목가적 정서의 시인들로 유명한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 자연에 대한 예찬과 찬미, 어린 시절의 순수에 대한 찬미, 과거,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 이것이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을 따라다닌 수식어였다. 그런 탓에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은 현실을 외면한 비정치적인 시인들로 오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교과서나 개론서가 초래한 영국 낭만주의에 대한 명백한 오해이다. 교과서가 결코 소개하지 않는 영국 낭만주의의 다른 시들은 어떠한 참여 문학보다도 더 치열하며 급진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들은 후퇴되어가는 민주주의, 첨예해지는 자본주의의 모순 앞에 누구보다 분노했다. 현실정치에 대한 환멸은 이들을 ‘지금-이곳(now, here)’ 아닌 다른 어딘가로 이끌었다. 낭만주의 시에 가득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은 혹독하고 참담했던 당대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 나타났던 것!
부정성과 이상성의 공존 : 윌리엄 블레이크 시 세계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 ~1827)는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의 발발에 큰 영향을 받았고 다른 한편 산업혁명으로 인한 당대의 삭막한 현실에 매우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시인이다. 피터 마샬에 의해 “현대 아나키즘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기도 했던 블레이크는 결혼, 교육, 종교(기독교) 등 제도적 장치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블레이크가 가진 현실에 대한 부정성(negativity)의 강도는 꿈꾸는 세계의 이상성(ideality)과 맞물려 있다. ‘순수’의 강도가 클수록 ‘현실’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세지고, ‘천국’에 대한 열망이 클수록 ‘지옥’에 대한 환멸의 강도가 커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상 파괴적 세계관의 정수 : 퍼시 셸리의 시 세계
퍼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 ~ 1822)는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낭만주의 시인이다. 유년기에 이미 ‘미치광이 셸리’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는, 대학에서는 퇴학당했고, 출판사로부터는 출간을 거부당했으며, 30세의 이른 나이에 요절한 드라마틱한 인생의 주인공이다. 그의 글에 담긴 강력한 우상 파괴적 메시지는 노동자들의 권리장전 운동(Chartism)에 영감을 제공했으며, 마르크스, 간디, 톨스토이 등의 거장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퍼시 셸리도 다른 영국 낭만주의 시인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 탐닉하는 이원성이 발견된다. 현실에 대한 강한 환멸과, 현실 너머의 이상에 대한 갈망. 셸리의 시는, 정치적 래디컬과 서정에의 탐닉을 동시에 추구했던 영국 낭만주의 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오민석(시인, 문학평론가,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저자 오민석은 충남 공주 출생.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현재 단국대 영문학과 교수로 문학이론, 현대사상, 대중문화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기념 신인상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며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그리운 명륜 여인숙』, 『기차는 오늘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이론 연구서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대중문화 연구서,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 『밥 딜런: 자유와 침묵의 전사』(근간), 시 해설집 『아침 시: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에세이집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오민석 교수의 생각 노트, 번역서로 파스코 포파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등이 있다. 부석 평론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