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문학 비평가이자 이론가로 경력의 정점에 있던 1977년, 롤랑 바르트는 한 권의 이상한 책을 출간한다. 매력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사랑의 단상』은 주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한 고찰처럼 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주변인과의 대화, 개인적인 회고까지 포함해 다양한 출처에서 끌어온 문장들과 생각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발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소설도 에세이도 평론도 연구서도 아닌 이 책은, 곧바로 독자들을 사로잡았고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어 버렸다.
읽는다는 것 혹은 사랑한다는 것
바르트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담론의 조각들을, ‘문형’이라는 이름으로 끌어모으며 그에 대한 매혹적인 성찰을 그려낸다. 그것은 해석인 동시에 재현이고, 발화인 동시에 설명이며, 이론이면서도 고백이 되는 기묘한 텍스트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의 철학이며, 사랑의 발화인 동시에 사랑의 독서이기도 하다. 바르트는 사랑하는 이가 고백하는 당사자이면서도 작가이자 평론가, 독자가 되는 매혹적인 담론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고, 독자 역시 그 자리에 초대받는다.
사랑에의 초대
탁월한 푸코 연구자이자 프랑스 철학의 소개로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었던 허경 교수는 이 책을 함께 읽으며 각자 자신만의 사랑의 단상을 쓰기를 권한다. 바르트가 그리했듯이, 우리도 사랑하는 이로서 독자가 될 때, 동시에 해석자이자 창작자가 되어야 하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트의 행간을 가로지르는 라캉의 이론이나 무수한 참조점을 읽어내는 것을 넘어서, 각자의 사랑의 단상을 써보는 자리에서 함께 읽기를 시작해 보자.
허경(인문연구자)
고려대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서양철학을 전공, ‘미셸 푸코의 윤리의 계보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석학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지도를 받아 논문 <미셸 푸코와 근대성>을 제출, 최우수 등급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및 철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하며 여러 대학과 인문학 공동체에서 가르치는 동안 철학, 문학, 과학 분야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무수한 글을 읽고 썼다. 옮긴 책으로 질 들뢰즈의 『푸코』(동문선) 등이 있으며, 현재 『푸코 선집』(길)을 번역 중이고, 조만간 저술 『미셸 푸코 - 개념의 고고학』, 『푸코와 근대성』(이상 그린비)을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