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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아는 사람은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공자도 주역을 보았나?
공자는 주역에 관한 10개의 해석을 단 바 있다. 그것은 날개 익(翼)자를 써서 십익(十翼)이라고 불린다. 주역 원문이 너무 어렵고 무거워 날지 못하기에 공자는 그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놀라운 점은 십익(十翼) 이래로 무수히 많은 해설서가 쏟아졌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공자가 주역을 봤다는 사실에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2,700여 년 동안 유학자들 사이에서 공자가 ‘점을 봤는가?’에 대한 문제는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왔다. 그런 와중에 실제로 1971년 중국 장사의 마왕퇴라는 둔덕에서 한나라 시대의 묘가 발굴된다. 그곳에서는 희귀한 고문서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특이할 점은 논어에 나와 있지도 않은 공자와 제자들의 대담내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서례(筮例)들
점을 친 사례를 서례(筮例)라고 한다. 주역에 대한 해석은 4,000년 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역사의 후미진 곳에서 누구나 아는 역사에까지 주역은 역사 안에서 역사의 운명을 서술하고 있던 것이다.
세종대왕도 주역을 참조했다
충녕대군 시절의 세종대왕은 주역에 능통했다. 주역에 대한 그의 조예는
주변의 대신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뛰어났다.
여진 북벌을 감행할 당시 세종대왕이 총사령관한테 내린 교지가 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점을 안 쳐도 안 되고, 점을 완전히 믿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반드시 점을 참조하라!"
원균의 운명을 점친 이순신
이순신의 진중일기에는 주역점에 관한 사례가 약 20차례에 걸쳐 실려 있다. 이순신을 제치고 삼도수군 통제사가 된 원균의 앞날을 이순신은 이미 2개월 전에 점친 상태였다.
원균의 괘는 水雷屯(수뢰준)괘에 아주 많은 효가 동해서 天風(천풍구)괘로 변하는 괘였다. 水雷屯(수뢰준)괘는 나가기 힘들다는 의미일 때는 준으로 발음하고 부동의 대기를 뜻할 때는 둔으로 발음하는데 주역에서는 준으로 발음한다. 원균은 왜군의 도발에도 군대를 주둔하고 나가지 않아야 했는데 결국, 조정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총공격에 나서게 된다.
이순신은 원균에 관한 괘를 용극체라고 해석했다. '용(龍)이 체(體)를 극(極)했으니 너무 많이 동(動)했다'라는 뜻. 진중일기의 표현에 따르면 그야말로 대흉(大凶)이었던 것이다. 결국, 삼도의 모든 수군이 대패했고 총사령관인 원균도 죽게 된다.
주역의 과학성
64는 DNA 뉴런 구조와 일치한다. 우연한 일치인지 엄청난 발견인지는 알 수 없다. 주역이 비과학적이기에 쓸모없는 미신이라 말하기는 쉽다. 굳이 과학적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지만, 주역은 수학으로 말하면 2진법으로 되어 있고 논리적으로 보면 음양(陰陽)의 논리로 되어 있다. 천재 철학자이자 수학자 라이프니츠는 주역의 2진법적 성격을 실제로 수학에 적용시켰다. 그는 실제로「0과 1의 기호만을 사용, 그 효용 및 그것이 복희의 고대 중국의 괘상(卦象)에 주는 의미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강좌의 미래는?
황태연 교수는 실제 오프라인 수업에서 본 주역 강좌에 관한 괘를 뽑았다. 감지관(坎之觀)이었다. 감괘(坎卦)는 대단히 위험한데 노력을 했더니 약간의 소득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 본 강좌는 오프라인 강의 시 수강 인원이 모자라 폐강이 될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감지관 즉, 감坎이 관觀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관괘는 열심히 공부해서 어려운 처지를 탈출한다는 괘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황태연 교수는 이 수업을 마치고 나면 “동네 선생 노릇쯤은 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 내다본다.
< 주역>이 미래를 예지하게 해주는 말씀이라 하여 단순히 비과학적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 유구한 기간 쌓여온 방대한 사례들은 오히려 과학보다도 더한 신뢰감을 줄 것이다. 이 강좌를 통해 칸트의 합리적 이성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나아가 보자.
황태연(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헤겔의 정치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에서 「최근 기술변동 속에서의 지배와 노동(Herrschaft und Arbeit im neueren technischen Wandel)」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유학 시절 한겨레신문 프랑크푸르트 통신원으로 3년 간 근무하였고, 동서고금을 뛰어넘는 정치철학 전반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다수의 저서를 출간해 왔다.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1998-2003), 새천년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장(2003-4), 재단법인 민주당연구소장(2007-8)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