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머는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현대 해석학의 토대를 확립했다. 마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브레슬라우, 마르부르크,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폴 나토르프, 마르틴 하이데거, 니콜라이 하르트만 등에게 사사했다. 하이데거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나치즘에 대한 태도에서는 거리를 두었다. 라이프치히,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102세의 장수를 누리며 20세기의 주요 지성과 교류했다.
해석학적 철학의 혁신
가다머의 주저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은 1960년 출간되어 현대 해석학의 기념비적 저작이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이해'를 단순한 방법론이 아닌 인간 존재의 근본적 양식으로 규정했다. 가다머는 '선입견(Vorurteil)'을 부정적 의미가 아닌 모든 이해의 필수적 조건으로 재평가했으며, '지평융합(Horizontverschmelzung)'이라는 개념을 통해 해석자와 텍스트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설명했다. 또한 '효과역사(Wirkungsgeschichte)'의 개념으로 역사적 전통이 우리의 현재 이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대화와 언어의 철학
가다머는 진정한 이해가 이루어지는 장으로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에게 대화는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닌 진리에 접근하는 근본적 방식이었다. 『진리와 방법』 이후 『이성의 찬미(Lob der Theorie)』, 『아름다움의 현실성(Die Aktualitat des Schonen)』 등의 저서에서 언어, 예술, 문학 등 다양한 영역에 해석학적 관점을 확장했다. 가다머의 철학은 과학기술의 지배와 방법론적 객관주의에 대항하여 인문학적 진리와 이해의 가치를 옹호했으며,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 간의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의 영향은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비평, 신학, 법학, 사회과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미치고 있으며, 리쾨르, 하버마스 등 현대 사상가들과의 비판적 대화를 통해 현대 철학의 주요 흐름을 형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