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서서, 똑같은 얼굴들을 본다. 회사에 도착하면 어제 하던 일의 연장선이 기다리고 있다. 퇴근 후에는 내일을 위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취업을 준비할 때는 '취업만 하면' 달라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정작 일을 시작하고 나니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만이 남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대체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부조리라는 진단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1942년 발표한 『시지프 신화』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라고.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충격적인 첫 문장이지만, 카뮈가 던지는 질문의 본질은 명확하다. 삶이 과연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카뮈는 이 질문 앞에 선 인간의 상태를 '부조리'라고 불렀다. 부조리란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욕구와, 침묵하는 세계 사이의 균열이다. 우리는 세상이 정의롭고 공정하기를, 노력하면 보상받기를, 내 삶에 분명한 목적이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계는 그런 기대에 답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집값은 오르고, 성실하게 일해도 미래는 불투명하며, 끝없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
신화 속의 형벌, 우리의 일상
그리스 신화에는 시지프라는 인물이 나온다. 신들을 속인 죄로 그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다.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려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시지프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그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영원히. 카뮈는 오늘날의 노동자가 그날그날 똑같은 작업을 하며 사는 운명이 시지프에 못지않게 부조리하다고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네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다시 네 시간을 일하고, 저녁을 먹고 잠든다. 그리고 월화수목금토가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된다.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고, 취업 후에는 승진을 위해 경쟁하고, 결혼하면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고, 아이를 낳으면 교육비를 마련하느라 더욱 치열하게 일한다.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지만, 어느 순간 문득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시지프의 바위처럼.
반항이라는 선택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카뮈는 부조리 앞에 선 인간에게 세 가지 길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자살이다. 의미 없는 삶을 끝내는 것. 둘째는 종교나 이념 같은 초월적 희망에 기대는 것이다. 내세나 더 나은 미래를 믿으며 현재의 고통을 견디는 것. 하지만 카뮈는 이 둘 모두 부조리로부터의 도피라고 본다. 자살은 부조리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에 굴복하는 것이며, 희망은 부조리를 외면하고 거짓된 위안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무엇인가. 카뮈가 제시하는 답은 '반항'이다. 여기서 반항이란 부조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부조리를 똑바로 응시하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의미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 카뮈는 이것을 반항, 자유, 열정이라는 세 가지 귀결로 설명한다.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는 반항의식, 어떤 외적 의미에도 기댈 필요 없는 자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열정.
행복한 시지프
카뮈는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맺는다. 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고. 그리고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어떻게 영원한 형벌 속에서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카뮈의 답은 이렇다. 시지프가 행복한 이유는 그가 자신의 운명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는 산을 내려가 다시 바위를 밀기 시작한다. 이때 그는 더 이상 신들의 형벌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여 바위를 미는 주체가 된다. 의미는 세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바위를 밀어 올린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같은 자리에서 시작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면 이 반복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카뮈가 말하는 반항이란 결국 이것이다. 세상이 의미를 주지 않는다면 내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언젠가 바위가 정상에 머물 거라는 헛된 희망도, 이 모든 게 허무하다며 포기하는 것도 아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일상을 살아내는 나 자신을 긍정하는 것.
시지프는 행복한가? 카뮈는 그렇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그럴 수 있다. 의미 없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를 선택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