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주세요." 취업 면접장에서, 연애 앱에서, 부동산 상담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확실한 것'을 찾는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계속 흔들린다. 오늘 핫한 직업이 내일은 사라지고, 평생직장이란 말은 이미 옛 이야기가 됐다. SNS에 올린 행복한 커플 사진 뒤로 관계는 예측할 수 없이 변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변화 속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
동양과 서양, 2천 년을 가로지른 공명
기원전 7세기경 만들어진 주역과 1968년 출간된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시공간을 넘어선 이 두 철학은 놀랍게도 같은 진리를 말한다. 세계의 본질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와 '생성'이라는 것이다. 주역에서 '역(易)'이란 글자 자체가 도마뱀을 상징하는데, 도마뱀이 하루에도 열두 번 몸의 색을 바꾸듯 만물은 쉼 없이 변한다는 뜻이다. 들뢰즈 역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기동일적인 실체가 아니라 매 순간 변화하며 달라지는 과정으로 보았다.
주역의 핵심 개념인 음양(陰陽)은 단순히 대립하는 두 힘이 아니다. 음과 양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그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낳는다. 이를 '상반상성(相反相成)'이라 하는데, 서로 반대되면서도 서로를 이루어낸다는 뜻이다. 들뢰즈가 말한 '차이'도 이와 닮았다. 그에게 차이란 동일한 것들 사이의 비교가 아니라, 세계를 끊임없이 생성시키는 근본적인 힘이다. 모네가 2년간 매일 그린 루앙 대성당 그림들이 하나도 같지 않듯이, 반복 속에서도 매번 차이가 생겨나고 새로운 것이 창조된다.
왜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할까
서양 철학은 플라톤 이래 2천 년 넘게 변하지 않는 '이데아'를 진리로 여겼다. 선의 이데아, 정의의 이데아처럼 영원불변하는 본질이 있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 불완전한 복사본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 일상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진짜 나를 찾아야 해", "우리 관계의 본질이 뭘까", "인생의 확실한 목표를 세워야지" 같은 말들 속에는 변하지 않는 어떤 본질이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런데 들뢰즈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그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는 대신, 변화 그 자체를 긍정하라고 말한다. 주역도 마찬가지다. 64괘는 세상의 모든 상황을 64가지로 분류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각 괘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모든 괘는 다른 괘로 변화할 수 있고, 그 변화의 과정 자체가 우주의 이치다. 지금 어려운 상황(坤卦)에 있다 해도 그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반드시 새로운 국면(乾卦)으로 전환된다.
불안의 시대, 생성의 철학이 주는 위안
현대인의 불안은 대개 '확실성의 상실'에서 온다. 부모 세대가 누렸던 안정적인 생애주기는 무너졌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고, 정규직이 되어도 평생직장이라는 보장이 없다.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 같은 이정표들은 선택 가능한 옵션 중 하나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 필사적으로 '안정'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주역과 들뢰즈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저항하는 대신, 변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들뢰즈는 반복이 단순히 같은 것의 되풀이가 아니라고 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서는 것은 똑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미세하게 변하고 있다. 어제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감정을 느끼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주역이 말하는 '일음일양(一陰一陽)'도 같은 뜻이다.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그 흐름 자체가 '도(道)'이며, 그 끊임없는 변화 속에 생명의 리듬이 있다.
고정된 나를 놓아주기
"그럼 나는 누구인가?" 변화를 받아들이면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들뢰즈의 대답은 명쾌하다. 당신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스무 살의 당신과 서른 살의 당신은 다르고,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당신도 엄밀히 말하면 같지 않다. 주역도 이를 인정한다. 사람을 하나의 완결된 존재로 보는 대신, 음양의 기운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생성의 장으로 본다.
이는 불안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해방적인 메시지다. 과거의 실패가 '진짜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 지금 어떤 상태에 있든, 그것은 변할 수 있는 일시적 국면일 뿐이다. 중요한 건 변화를 거부하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대신, 그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다. 주역의 지혜는 점을 쳐서 미래를 맞히려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변화 방향을 읽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들뢰즈가 강조한 것도 결국 이것이다. 세계는 이미 주어진 무대가 아니라, 우리가 참여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생성의 과정이라는 것.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나는 왜 이럴까"라고 한탄했다면, 주역과 들뢰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이런' 상태는 영원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도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생성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흐름 속에서 춤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