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등장한 지 두세 해가 지났다. 이제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검색엔진 대신 AI에게 물어본다. 복잡한 수학 문제부터 요리 레시피, 심지어 인생 상담까지 AI는 척척 답해준다. 하지만 이런 '답변의 홍수' 시대에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바로 '질문하는 능력' 말이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도 그는 AI의 편리함에 감탄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질문을 멈춘 것에 더 큰 우려를 표했을 것이다.
즉답의 시대, 사라진 무지의 자각
소크라테스의 가장 유명한 말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이다. 이는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진정한 지혜의 출발점이 '무지의 자각'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AI 시대의 우리는 어떤가? 클릭 몇 번이면 웬만한 답은 다 나온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점점 모르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되고, 심지어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친구와 대화 중에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고 하자. 예전이라면 "정확히는 모르겠는데..."라며 서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함께 찾아보거나 토론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AI에게 묻는다. 답이 나오면 토론은 끝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왜 그런지', '정말 맞는지', '다른 관점은 없는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을 놓치게 된다.
질문 없는 학습의 한계
소크라테스의 교육 방법은 '산파술'이라고 불린다. 그는 학생들에게 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도왔다. 플라톤은 『메논』에서 상기설을 통해 진정한 학습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소크라테스가 무학의 노예소년에게 기하학을 가르치는 장면에서, 소크라테스는 답을 직접 알려주지 않고 질문을 통해 소년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돕는다. 이는 지식이 단순히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사고하는 과정을 통해 체득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AI 시대의 학습은 어떤가? 학생들은 복잡한 문제를 만나면 AI에게 풀이과정까지 요청한다. 결과적으로 정답은 얻지만,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고력을 기르는 기회는 놓친다. 더 심각한 것은 '왜 이 답이 맞는지', '다른 접근법은 없는지' 같은 비판적 사고 없이 AI의 답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근육을 기계로 대신 움직이는 것과 같다. 편리하지만, 정작 자신의 근육은 점점 약해진다.
진짜 질문이 사라진 시대
소크라테스가 던진 질문들을 보면 대부분 답이 없거나, 있더라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이런 질문들은 구글이나 AI에 물어봐도 만족스러운 답을 얻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질문들은 정보가 아니라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을 멀리하고 있다. 대신 즉시 답을 얻을 수 있는 기능적인 질문들에만 익숙해진다. "오늘 날씨는?", "이 단어의 뜻은?", "이 문제의 답은?" 같은 질문들 말이다. 물론 이런 질문들도 필요하지만,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진정한 사고력을 기를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질문하는 용기
그렇다면 AI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소크라테스적 사고를 회복할 수 있을까? 첫째, AI를 정답 제공기가 아니라 사고의 파트너로 활용해야 한다. AI의 답변을 받았을 때 "정말 그럴까?", "다른 관점에서는 어떨까?", "이 답변의 한계는 무엇일까?" 같은 후속 질문을 던져보자.
둘째, 답이 명확하지 않은 질문들을 의도적으로 던져보자. 일상에서 마주치는 윤리적 딜레마나 인생의 근본 문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런 질문들은 AI가 답해줄 수 없고, 오직 우리 자신만이 답할 수 있다.
셋째,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를 가지자. 모든 것을 즉시 알 필요는 없다. 모르는 상태에서 머물며 천천히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소중한 배움이다.
소크라테스가 챗GPT 시대에 살았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기계가 모든 답을 안다고? 그렇다면 나는 이 기계에게 물어보고 싶다. 너는 네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진정한 지혜는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AI가 답해주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는 질문하는 철학이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