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0년 가을, 영국 서리 지방의 한 수도원. 촛불이 깜박이는 서재에서 한 프란체스코회 수사가 양피지 위에 펜을 달리고 있다. 그의 이름은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1287~1347).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써내려가는 몇 줄의 문장이 700년 후 과학혁명의 토대가 되고, 현대 철학과 과학의 기본 원리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수도원의 종탑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윌리엄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둔스 스코투스의 주석서들이 펼쳐져 있었다.
"도대체 이 모든 복잡한 설명들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윌리엄은 중얼거리며 펜을 내려놓았다. 그는 며칠째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스콜라 철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많은 논증들,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하는 온갖 실체들과 원인들이 과연 진리에 가까워지는 길인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촛불이 흔들리며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윌리엄은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그림자를 설명하기 위해 그림자 뒤에 또 다른 그림자를 가정할 필요는 없다. 촛불과 물체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라틴어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Entia non sunt multiplicanda praeter necessitatem" (필요 이상으로 존재를 늘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후세 사람들이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부르게 될 원리의 탄생 순간이었다.
윌리엄은 계속해서 썼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더 적은 가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가정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우선한다."
그가 이 원리를 제시한 배경에는 당시 스콜라 철학의 과도한 복잡성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있었다. 13세기 말 14세기 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 교리를 결합하려는 시도들이 점점 더 정교해지면서, 철학자들은 온갖 형이상학적 실체들을 가정하기 시작했다. 보편자, 개별화 원리, 질료와 형상의 복합체 등등, 설명해야 할 것보다 설명하는 요소들이 더 많아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윌리엄은 이런 경향을 경계했다. 그는 "면도날"이라는 비유를 통해 불필요한 가설들을 잘라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치 면도날로 수염을 깎아내듯이, 사고에서도 군더더기를 제거해야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원리는 단순히 철학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윌리엄에게는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깊은 의미가 있었다. 그는 신의 전능성을 강조했는데, 만약 신이 전능하다면 복잡한 중간 매개체들 없이도 직접적으로 세상에 개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과 인간 사이에 수많은 천사의 위계나 형이상학적 존재들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원리는 인식론적 함의도 가지고 있었다. 윌리엄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보았다. 보편자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유명론적 입장을 취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것은 개별적인 사물들뿐이며, '인간 일반'이나 '빨강 일반' 같은 보편자들은 우리 마음속의 개념일 뿐이라고 보았다.
밤이 새도록 글을 쓴 윌리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동이 트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방금 써내려간 원리가 얼마나 혁명적인 의미를 가질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오컴의 면도날은 14세기에는 주로 신학과 철학 논쟁에서 활용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영향력은 점점 확대되었다. 17세기 과학혁명 시대에 갈릴레이와 뉴턴 같은 과학자들이 자연 현상을 설명할 때 이 원리를 암묵적으로 활용했다. 복잡한 천구 이론 대신 단순한 수학적 법칙으로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 것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의 배경에는 오컴의 면도날이 있었다.
현대에 와서는 이 원리가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이 되었다. 두 개의 이론이 같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더 단순한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다윈의 진화론도 모두 이전의 복잡한 설명들을 더 단순하고 우아한 원리로 대체한 사례들이다.
하지만 오컴의 면도날이 만능 도구는 아니다. 때로는 현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할 수도 있고, 단순함을 추구하다가 중요한 요소를 놓칠 위험도 있다. 양자역학의 등장은 자연이 때로는 우리의 직관적 단순함을 거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컴의 면도날은 여전히 유효한 원리다. 특히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복잡한 음모론보다는 단순한 설명을, 과도한 추측보다는 확인 가능한 사실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비판적 사고의 기본이다.
윌리엄이 그날 밤 양피지에 써내려간 몇 줄의 문장은 이렇게 700년을 넘나들며 인류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중세의 한 수도사가 제시한 '단순함의 원리'는 과학혁명을 거쳐 현대의 디지털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의 면도날은 여전히 예리하게 불필요한 복잡성을 잘라내며, 진실을 향한 길을 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