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21세기 소셜 미디어 시대를 만나는 가상의 상황을 담고 있다. 1970년대 파리의 한 옥탑방에서 라캉이 시간여행을 통해 현대 기술과 조우하게 되는 이 상상의 시나리오는 욕망, 응시, 주체성에 관한 라캉의 복잡한 이론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라캉의 거울 단계와 상징계 이론이 어떻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지를 MZ세대의 언어로 풀어낸 철학적 단상이다.)
파리의 깊은 밤. 생 제르맹 데 프레 거리의 한 오래된 아파트 옥탑방. 자크 라캉은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세느강 너머로 빛나는 에펠탑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책상에는 이상한 빛을 내는 납작한 직사각형 기계가 놓여 있었다.
라캉은 한동안 그것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시간여행자가 두고 간 이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은 그에게 21세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이라..." 라캉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흥미롭군. 완벽한 상상계의 감옥이야."
라캉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셀카를 찍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을 살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50년 전에 말했던 '거울 단계'가 이렇게 진화할 줄이야. 타인의 응시 속에서 자아를 확인하려는 욕망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나다니."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라캉은 스마트폰을 서둘러 숨기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검은 후드티를 입은 20대 청년이 서 있었다. 시간여행자였다.
"선생님, 제 휴대폰 좀 봤어요? 여기 두고 간 것 같아서요." 청년이 물었다.
라캉은 천천히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들어오게. 자네와 할 이야기가 많아."
청년은 불안한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라캉은 책상 서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 기계... 흥미로운 물건이군." 라캉이 말했다. "자네의 시대에는 모두가 이런 것을 갖고 있나?"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의 모든 사람이요. 이게 없으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요."
"사회생활?" 라캉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 안에서 무슨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가? 저건 상징계의 파편화된 시뮬라크라에 불과해."
청년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스타나 틱톡 같은 앱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에서요."
라캉은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자네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내 이론이 더욱 명확해졌어. 인간은 항상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사실을."
"그게 무슨...?" 청년이 물었다.
"자, 설명해주지." 라캉이 손짓했다. "그 '좋아요' 버튼을 생각해보게. 사람들은 왜 그것에 집착하지? 그건 타자의 인정, 즉 '응시'를 갈망하기 때문이야. '내가 봤어'라는 타자의 확인이 주체에게 존재감을 부여하는 거지."
청년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좋아요 숫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긴 해요..."
"그뿐인가?" 라캉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 '스토리'라는 기능은 어떤가? 24시간 후에 사라지는 이미지라... 이건 욕망의 본질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예야. 우리의 욕망은 항상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어야 욕망으로 존재할 수 있거든."
"스토리가 사라지니까 더 자주 확인하게 되는 것 같긴 해요."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캉은 흥분한 목소리로 계속했다. "그리고 '필터'! 완벽한 판타지의 구현이지. 현실의 결핍을 가리는 상상계의 베일이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가 실제보다 더 완벽해 보이도록 만드는..."
청년은 라캉의 말을 들으며 눈을 깜빡였다. "와, 진짜 소름 돋아요. 저희 세대를 너무 잘 꿰뚫어보시네요."
"인간의 무의식은 시대를 초월해 작동하네." 라캉이 미소지었다. "결국 SNS는 현대판 거울 단계야. 자아는 타자의 인정을 통해서만 형성되지. 자네들은 그저 더 정교한 거울을 갖게 된 것뿐이야."
청년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라캉을 바라보았다. "그럼 선생님 관점에서는, 이런 소셜 미디어가 건강한 건가요? 아니면 해로운 건가요?"
라캉은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건강하다? 해롭다? 그런 이분법적 구분은 의미가 없어. 중요한 건 그것이 어떻게 주체의 욕망을 구조화하는가 하는 거지. 소셜 미디어는 새로운 상징계의 질서를 만들어냈어. 이모지, 해시태그, 팔로워 수... 이것들이 현대인의 정신을 구성하는 언어적 요소가 된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셜 미디어를 끊어야 해요?" 청년이 물었다.
라캉은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네도 알다시피, 완전한 충족이란 불가능해. 모든 욕망의 대상은 결국 '오브제 아'(objet a)일 뿐이지. 진정한 충족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환상의 대상 말이야."
"그럼 답이 없네요." 청년이 한숨을 쉬었다.
"아니, 답은 있어." 라캉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바로 자신의 욕망을 인식하는 것. '나는 왜 이 게시물을 올리는가?', '나는 누구의 응시를 갈망하는가?', '이 이미지가 나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거지."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라캉은 책상에서 종이와 펜을 집어 들었다. "자, 내가 간단한 다이어그램을 그려주겠네."
그는 보로미안 매듭 모양의 세 개의 원을 그렸다.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이 세 차원이 교차하는 지점에 주체가 위치해. 소셜 미디어는 상상계와 상징계의 영역을 확장했지만, 실재계는 여전히 그 너머에 존재하지."
"실재계요?" 청년이 물었다.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상징화 이전의 영역이야. 트라우마, 죽음, 그리고 진정한 주이상스(jouissance)의 영역이지. 인스타그램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
청년은 잠시 침묵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은 경험이 더 진짜라는 건가요?"
라캉은 크게 웃었다. "그렇게 단순하진 않아. 하지만 자네가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순간, 그것은 이미 상징계의 일부가 되어버려. 자네의 진짜 경험은 항상 그 너머에 있지."
"이 대화도 제 인스타에 올리면 안 되겠네요."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올려도 좋아. 하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의 이 만남은 자네의 팔로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오브제 아'로 변모해버릴 테니."
청년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선생님 말씀 정말 많이 생각해볼게요. 근데... 어떻게 다시 제 시대로 돌아가죠?"
라캉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자네가 해결해야 할 문제야. 난 정신분석학자지, 시간여행 전문가가 아니니까."
청년은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캉은 그를 문까지 배웅하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기억하게. 타자의 욕망 속에서 길을 잃지 말고, 자신의 욕망을 찾아가게. 자네의 '인스타'에 진정한 자아는 없어. 그건 단지 거울 속의 환영일 뿐이니까."
문이 닫히고, 라캉은 창가로 돌아와 다시 한번 파리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세미나 주제가 떠올랐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주체성: 욕망의 알고리즘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