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년 독일 예나. 나폴레옹 군대가 도시를 점령한 후 몇 달이 지났다. 대학 강의실은 텅 비었고, 교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한 남자만큼은 여전히 자신의 서재에서 촛불을 켜고 앉아 있었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37세. 그는 인류 정신의 발전사를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로 완성하려 하고 있었다.)
헤겔은 깃털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예나의 2월 밤하늘은 차갑고 어두웠지만, 그의 머릿속은 뜨거운 사유로 가득했다. 책상 위에는 수백 장의 원고가 쌓여 있었고, 그 맨 위에는 방금 완성한 문장이 잉크의 향기를 풍기며 마르고 있었다.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
그가 중얼거렸다. 이 책은 단순한 철학서가 아니었다. 인간 의식이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 그리고 그 발전의 끝에서 무엇을 만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정신적 모험담이었다.
헤겔은 다시 펜을 들었다. 그는 이 책에서 의식의 여행을 그려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각적 확신에서 시작해서, 지각을 거쳐, 오성으로 나아가고, 다시 자기의식의 투쟁을 경험하며, 마침내 절대정신에 도달하는 긴 여정을 말이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부분을 다시 읽어보자."
헤겔은 자신이 며칠 전 쓴 원고를 뒤적거렸다. 그는 두 자기의식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생사를 건 투쟁을 묘사했다. 한쪽은 죽음을 무릅쓰고 인정을 요구하는 주인이 되고, 다른 한쪽은 생명을 택하고 복종하는 노예가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노예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실현하게 되고, 주인은 오히려 노예에게 의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변증법이다."
헤겔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正)과 반(反)이 충돌하여 합(合)을 이루는 과정. 이것이 바로 세계 전체를 움직이는 원리였다. 역사도, 사회도, 인간의 사유도 모두 이 변증법적 운동을 따라 발전한다.
그는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갔다. 절대정신에 관한 장이었다. 여기서 의식은 마침내 자신이 곧 절대정신의 한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주체와 객체, 사유와 존재, 개별과 보편이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이다.
"정신은 스스로를 아는 정신이다."
헤겔이 마지막 문장을 썼다. 그리고 펜을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7년 동안 구상하고 2년 동안 집필한 이 책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창밖에서는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헤겔은 원고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려워할 것이다. 의식의 발전 단계를 하나씩 따라가면서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회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의 길이다. 안일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다.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헤겔은 마지막으로 원고를 훑어보았다. 감각적 확신에서 시작해서 절대정신에 이르기까지, 의식의 모든 단계가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각 단계에서 의식은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며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정신의 현상학이다.
몇 주 후, 이 원고는 밤베르크의 출판사 고벤트 운트 베스에서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었다. 헤겔은 이 책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인간 정신의 발전을 이토록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은 없었다고.
새벽 햇살이 서재로 스며들었다. 헤겔은 마지막으로 원고 표지에 제목을 적었다: "정신현상학 - 학문의 체계, 제1부." 그리고 그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G.W.F. 헤겔."
이것이 바로 독일 관념론의 정점이 될 책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훗날 마르크스는 이 책의 변증법을 뒤집어 유물론적 변증법을 만들어낼 것이고,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타자에 대한 통찰을 얻을 것이며, 코제브는 이 책을 통해 20세기 프랑스 철학계 전체에 헤겔 열풍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직 미래의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 예나의 작은 서재에서는 한 철학자가 인간 정신의 위대한 여정을 그려낸 원고를 완성하고,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