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democracy'(민주주의)가 18세기까지 '혼란'과 '무질서'를 뜻하는 부정적 단어였다!?
'demos'는 누구였는가: 민주주의 어원 속 계급의 정치학
그리스어 demokratia의 원형적 의미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 'democracy'는 그리스어 'demokratia(δημοκρατία)'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demos(δῆμος, 민중)'와 'kratos(κράτος, 권력)'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민중의 권력' 또는 '민중의 지배'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번역 속에는 2천 년 이상의 정치사상사적 변화가 응축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demos'는 단순히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demos'는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유민'을 지칭했다. 즉, 노예도 외국인도 아닌, 그렇다고 귀족도 아닌 중간 계층의 시민들을 말했다. 따라서 'demokratia'는 '모든 사람의 지배'가 아니라 '가난한 자유민들의 지배'를 의미했던 것이다.
라틴어 번역 과정에서 발생한 의미 변화
그리스어 'demokratia'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첫 번째 의미 변화가 일어났다. 로마인들은 이 개념을 'res publica(공화국)'나 'civitas(시민국가)'로 번역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리스식 직접민주주의의 급진적 성격이 상당히 완화되었다. 키케로는 『국가론』에서 순수한 민주주의를 경계해야 할 정치형태로 분류했으며, 대신 혼합정체를 이상적인 정치형태로 제시했다.
로마의 정치사상가들에게 'democratia'는 '중우정치(ochlocracy)'와 구별되어야 할 개념이었다. 폴리비우스는 『역사』에서 민주주의가 무질서와 혼란으로 빠질 위험성을 경고했으며, 이러한 사고방식은 후대 유럽 정치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중세 기독교 사상과 민주주의 개념의 잠복
중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demokratia'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을 기독교 사상과 결합시켰지만, 민주주의보다는 왕정을 이상적인 정치형태로 간주했다. 이 시기 정치사상의 핵심은 '신의 섭리'와 '왕권신수설'이었으며, 민중의 정치참여는 오히려 신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demokratia'의 정신은 다른 형태로 보존되었다. 중세 도시국가들의 길드 제도나 농촌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종의 '집단 지혜'가 발휘되었고, 이는 훗날 근대 민주주의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르네상스와 근대 초기의 번역 혁명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고전 그리스 문헌들이 재발견되면서 'demokratia'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작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론』에서 고대 그리스의 정치제도를 분석했지만, 여전히 공화정(republic)을 민주주의보다 우선시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의 번역자들은 'demokratia'를 번역할 때 상당한 곤란을 겪었다. 당시 유럽의 정치현실에서 '민중의 지배'는 상상하기 어려운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번역서에서 'demokratia'는 '민중정치', '공화정', '자유정치'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의미 재구성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democracy'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했다. 존 로크는 『정부론』에서 민주주의를 '동의에 기반한 정부'로 정의했으며,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일반의지'라는 개념을 통해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그리스식 직접민주주의와 근대적 대의민주주의를 구별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demokratia'가 소규모 도시국가에서만 가능했던 반면, 근대 국가에서는 대표제도를 통한 간접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어권에서의 독특한 발전
흥미롭게도 영어에서 'democracy'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7-18세기 영국에서 'democracy'는 여전히 '무질서'와 '혼란'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용어였다. 제임스 매디슨은 『연방주의자 논문집』에서 순수한 민주주의를 '파벌의 폭력'으로 규정했으며, 대신 '공화국(republic)'을 지지했다.
미국 독립 후에도 오랫동안 'democracy'와 'republic'은 서로 다른 개념으로 취급되었다. 토마스 제퍼슨은 'democratic republic'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두 개념을 결합시키려 했지만,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19세기의 대중화와 의미 확장
19세기에 들어서면서 'democracy'는 급속히 대중화되었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를 단순한 정치제도가 아니라 '사회상태'로 정의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정치영역을 넘어 사회 전체의 평등화 경향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과 『대의정부론』에서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다. 그는 '다수의 전제'라는 개념을 통해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했으며, 이는 현대 자유민주주의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20세기의 이데올로기적 경쟁
20세기에 들어서면서 'democracy'는 이데올로기적 경쟁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인민민주주의'를 주장했고,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웠다. 같은 'democracy'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근본적 차이를 지적했다. 그는 자유주의가 '개인의 권리'에 중점을 두는 반면, 민주주의는 '집단의 동질성'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석은 현대 정치철학에서 여전히 중요한 논점이다.
현대적 번역의 딜레마
오늘날 'democracy'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발생한다. 중국어의 '민주(民主)'는 'democracy'의 번역어이지만, 중국 고유의 정치사상인 '민본주의(民本主義)'와 혼재되어 사용된다. 일본어의 '민주주의(民主主義)'도 서구식 민주주의와 일본 전통의 합의정치 문화가 결합된 독특한 개념이다.
아랍어에서는 'democracy'를 '디무크라티야(ديمقراطية)'로 음차하거나 '슈라(شورى, 협의)'라는 전통적 개념으로 번역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슬람 정치사상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언어 번역 속에 드러나는 정치철학적 차이
결국 'democracy'라는 단어의 번역사는 단순한 언어학적 변화를 넘어 정치철학의 발전사를 보여준다. 그리스어 'demokratia'의 '직접적이고 급진적인 민중지배'에서 시작해서, 라틴어 번역을 거쳐 '절제된 공화정'으로 변화했고, 근대 계몽주의를 통해 '합리적 동의에 기반한 정부'로 재탄생했으며, 현대에 이르러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정치체제'로 발전했다.
각 시대와 각 언어권에서 'democracy'를 번역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정치문화와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현재의 정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이 개념이 걸어온 길고 복잡한 여정을 살펴봐야 한다.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으며, 번역은 더욱 그렇다. 우리가 사용하는 '민주주의'라는 말 속에는 2천 년 넘는 정치사상의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