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humanism)'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 '인간중심주의'나 '인도주의'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단어의 뿌리를 파고들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가 드러난다. 라틴어 'humanitas'에서 출발한 이 개념은 단순한 인간 예찬을 넘어서는 깊이를 담고 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Cicero, 기원전 106-43년)가 처음 사용한 'humanitas'는 '인간성'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인간성은 생물학적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키케로에게 humanitas는 '교육받은 인간', '문화적으로 세련된 인간',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을 의미했다. 즉, 타고난 인간이 아니라 '만들어진 인간'을 뜻하는 개념이었다.
그리스 철학과의 만남에서 탄생한 새로운 개념
키케로의 humanitas는 그리스어 'paideia(파이데이아)'의 번역어로 등장했다. 파이데이아는 '교육'을 뜻하지만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형성하는 전인교육을 가리켰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철인왕의 교육 과정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이 파이데이아였다.
로마인들이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생긴 이 번역어는 흥미로운 변화를 겪었다. 그리스의 파이데이아가 이상적 인간 형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로마의 humanitas는 여기에 실용적 덕목을 더했다.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humanitas를 갖춘 인간의 조건으로 웅변술, 법학, 역사학, 철학을 제시했다. 이는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로서 필요한 실무 능력들이었다.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로 이어진 변화의 물결
중세 시대에 humanitas는 기독교 신학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강조하며 humanitas의 맥을 이어갔다. 다만 그에게 인간의 완성은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14-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humanitas는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페트라르카, 에라스무스 같은 인문주의자들이 '휴마니스타(humanista)'라고 불리면서 현재 우리가 아는 '휴머니즘'의 모습이 갖춰졌다. 이들은 고전 그리스-로마 문헌 연구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가능성을 재발견하려 했다.
언어별로 달라지는 휴머니즘의 얼굴
흥미롭게도 humanitas에서 파생된 각국의 '휴머니즘' 번역어들은 서로 다른 뉘앙스를 갖는다. 영어 'humanism'은 종교적 신념과 대비되는 세속적 철학을 강조한다. 독일어 'Humanismus'는 교양과 문화적 완성에 무게를 둔다. 프랑스어 'humanisme'은 보편적 인권 사상과 연결된다.
한국어 '인본주의'나 '인도주의'라는 번역어는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인본주의'는 '인간이 근본'이라는 뜻으로 서구의 신 중심 사상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되기 쉽다. '인도주의'는 자선이나 박애 정도로 축소되어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원래 humanitas가 담고 있던 '인간 완성'의 의미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현대적 재해석과 그 한계
20세기 들어 휴머니즘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며 새로운 휴머니즘을 제시했다. 반면 레비스트로스 같은 구조주의자들은 휴머니즘 자체를 서구 중심적 편견으로 비판했다.
포스트모던 철학자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하며 전통적 휴머니즘의 종언을 예고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서구의 산물이며, 이제 그 역할이 끝났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humanitas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humanitas의 의미는 다시 한번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인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새롭게 묻고 있다. 키케로가 말한 '교육받은 인간'의 의미도 달라졌다. 정보 습득보다는 정보 해석과 판단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humanitas의 핵심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은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육과 문화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2500년 전 키케로의 통찰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휴머니즘'이라는 말 속에는 이렇게 오랜 역사와 다층적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 단순한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 인간이 어떻게 참다운 인간이 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