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네트워크 사유
우리는 매일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넘나들며 수백 개의 하이퍼링크를 클릭한다. 한 영상에서 다른 영상으로, 한 게시물에서 또 다른 게시물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정보의 바다를 항해한다. 이런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 사실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리좀'의 구조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리좀(rhizome)은 원래 생물학 용어로 땅속줄기를 뜻한다. 생강이나 대나무의 뿌리줄기처럼 어디서든 뻗어나가고, 끊어져도 다시 자라나며, 중심이 없이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식물의 특성을 가리킨다.
리좀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존재들 사이에 있다. - 『천 개의 고원』,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수직에서 수평으로
전통적인 지식 체계는 나무와 같았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해 줄기로 올라가고, 가지로 뻗어나가는 수직적 구조. 학문은 철학이라는 뿌리에서 시작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으로 가지를 쳤고, 각 분야는 또다시 세부 전공으로 나뉘었다. 기업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CEO를 정점으로 부서가 나뉘고, 팀이 갈라지는 피라미드 구조가 당연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수목형 구조는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를 보자. 누구나 편집할 수 있고, 모든 항목이 하이퍼링크로 연결되며, 어떤 중심적 권위도 없다. 블록체인 역시 마찬가지다. 중앙은행 없이도 화폐가 유통되고, 중개자 없이도 거래가 성사된다. 심지어 조직 문화도 변하고 있다. 애자일, 홀라크라시 같은 수평적 조직 구조가 각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결성의 시대, 고립의 역설
리좀적 사고는 무엇보다 '연결성'을 강조한다. 모든 점이 다른 모든 점과 연결될 수 있고, 어떤 위계도 없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SNS가 바로 이런 리좀의 전형적인 예다. 페이스북 친구의 친구를 통해 지구 반대편 사람과도 연결되고, 해시태그 하나로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고립되어 있다. 수천 명의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극심한 외로움을 호소하고, 실시간 메신저로 연결된 사람들이 정작 옆자리 동료와는 대화하지 않는다. 리좀적 연결이 증가할수록 실제적 관계는 오히려 희박해지는 역설.
다양성과 차이의 긍정
리좀의 또 다른 특징은 이질성이다. 동일한 것들의 반복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의 연결. 유튜브 알고리즘을 생각해 보자. 요리 영상을 보다가 철학 강의로, 게임 방송으로, K-pop으로 넘어간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이 '나'라는 한 사람 안에서 연결되고 의미를 만든다.
이런 리좀적 사고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다양성 문제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성별, 인종, 계급, 문화의 차이를 위계적으로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것. 중심과 주변의 구분 없이 모든 차이를 긍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리좀이 제시하는 공존의 방식이다.
창조성의 새로운 패러다임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을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놀랍도록 리좀적인 사고와 닮아있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 인문학과 기술, 예술과 과학, 동양과 서양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실제로 오늘날 가장 혁신적인 발견들은 학문 간 경계에서 일어난다. 생물학과 정보학이 만나 생물정보학이 되고, 심리학과 경제학이 만나 행동경제학이 된다. 의학과 공학이 융합해 의공학이 탄생하고, 예술과 기술이 결합해 미디어아트가 만들어진다. 리좀은 이런 창조적 융합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미래를 향한 사유
팬데믹은 우리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중국 우한의 바이러스가 몇 주 만에 전 세계로 퍼졌고, 글로벌 공급망은 단숨에 마비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놀라운 연대의 가능성도 목격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협력해 백신을 개발했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교육과 업무가 지속되었다.
기후 위기, 인공지능, 불평등 심화 등 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들은 모두 리좀적 특성을 띤다. 어느 한 국가,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연결된 복잡한 네트워크의 문제다. 따라서 해결책 역시 리좀적이어야 한다. 위계적 명령이 아닌 수평적 협력, 배타적 경쟁이 아닌 포용적 연대가 필요하다.
리좀은 단순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사유의 도구다. 중심 없는 네트워크, 위계 없는 연결, 차이의 긍정.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리좀이 던지는 메시지다. 뿌리와 줄기를 버리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땅속줄기처럼, 우리의 사고도 더 자유롭고 유연하게 진화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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