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정말 당연한가? 오늘날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익숙했던 일상의 균열을 목격했다.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접종 등을 둘러싼 논쟁들은 단순히 의학적 문제를 넘어 권력과 진실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계보학은 바로 이러한 '당연함'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철학적 방법론이다.
계보학이란 무엇인가
계보학(Genealogy)은 니체가 창안하고 푸코가 발전시킨 철학적 탐구 방법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역사학과는 다르다. 계보학은 현재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들, 도덕이라고 여기는 가치들,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기준들이 어떤 권력 관계와 투쟁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한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가치가 어떻게 권력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었다.
노예도덕은 주인도덕에 대한 원한(ressentiment)에서 생겨났다. -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그에 따르면 약자들이 자신들의 무력함을 미덕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기독교적 도덕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계보학적 방법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그는 광기, 범죄, 성(sexuality) 등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개념들이 사실은 특정 시대의 권력 관계와 지식 체계가 만들어낸 산물임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정신병원이나 감옥 같은 제도들은 단순히 환자나 범죄자를 격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개인을 훈육하는 권력 장치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계보학적 풍경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권력 관계 속에 살고 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고 유도한다.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버튼 하나가 우리의 자아 정체성을 좌우하고, 검색 엔진의 순위가 진실을 결정하는 듯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권력 관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각종 통제 조치들은 푸코가 말한 '생명권력(biopower)'의 현대적 모습을 보여준다. QR코드 체크인, 동선 추적, 격리 조치 등은 개인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전례 없는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통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위치 정보를 공개하고, 건강 상태를 보고했다. 푸코가 말한 '규율 권력(disciplinary power)'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권력은 더 이상 위에서 아래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를 감시하고 규율하도록 만든다.
진실과 권력의 공모
계보학의 가장 도발적인 통찰은 진실과 권력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도 특정한 권력 관계 속에서 생산되고 유통된다. 의학적 지식이 어떻게 제약회사의 이익과 연결되는지, 경제 이론이 어떻게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가짜뉴스' 논란도 계보학적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읽힌다. 문제는 단순히 거짓 정보의 유포가 아니라, 누가 진실을 판별할 권한을 갖는가 하는 것이다. 팩트체크 기관들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플랫폼 기업들이 정보를 검열할 권리는 누가 부여했는가?
현대의 '전문가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예측하고, 의사들이 건강을 처방하고, 심리학자들이 정상성을 정의한다. 하지만 이들의 지식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가? 계보학은 이러한 전문 지식들이 특정한 제도와 이해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저항과 창조의 가능성
계보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모든 것이 권력 관계의 산물이라면, 동시에 모든 것이 변화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는 단순한 지배욕이 아니라 창조적 생성의 원리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저항과 창조를 목격하고 있다. 오픈소스 운동은 지식의 독점에 맞서고, 암호화폐는 중앙집권적 화폐 시스템에 도전한다. 시민 저널리즘은 주류 미디어의 권위를 흔들고, 위키피디아는 지식 생산의 민주화를 실험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안들 역시 새로운 권력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자각이다. 비트코인이 가져온 것은 자유인가, 새로운 형태의 격차인가? 소셜미디어는 민주주의를 확장했는가, 아니면 새로운 통제 기제를 만들었는가? 계보학적 사유는 이러한 질문들을 계속 던지도록 요구한다.
계보학은 우리에게 '영원한 의심'의 시선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비판적 각성이다. 당연한 것을 낯설게 보고, 자연스러운 것에서 역사를 읽어내는 것. 이것이 계보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한 그것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계보학은 바로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철학적 도구다. 권력의 족보를 그리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의 자유를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
© 2025 아트앤스터디 + claude.ai, CC BY 4.0
이 저작물은 카피레프트(Copyleft) 정신을 따르며, 출처 표시만 하면 누구나 복제, 배포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