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독재를 극단적인 사례로만 기억한다. 히틀러, 스탈린, 박정희, 무솔리니… 낡은 흑백사진 속의 권위적 인물들, 혹은 현재도 억압 정치를 이어가는 몇몇 국가들의 현실을 떠올린다. 그렇게 보면, 독재는 마치 특별한 조건에서만 가능해지는 정치 체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독재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서 영원히 독재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독재는 아주 일상적인 언어, 익숙한 습관,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편의와 안정의 욕망 속에서 자라난다.
모든 독재는 한 사람의 욕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다수의 침묵”은 독재를 실현시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 침묵은 두려움과 피로, 혹은 무관심으로부터 비롯된다.
불안은 단호한 리더를 부른다
독재가 가장 쉽게 뿌리를 내리는 시기는 사회가 불안정할 때다. 정치가 무능하다고 느껴질 때, 언론이 신뢰를 잃었을 때, 경제가 무너지고 일상이 위태로워질 때 사람들은 ‘정리해 줄 사람’을 찾는다. “결단력 있는 지도자”, “강력한 통치”, “국가 안정을 위한 특별 조치” 같은 표현들은 점점 익숙하게 들려온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키고, 명확한 적을 설정하며, 모든 혼란의 원인을 ‘내부의 반역자’나 ‘외부의 위협’으로 돌리는 서사는 대중을 안심시키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그런 식의 ‘안정’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독립성, 사법의 자율성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들은 하나둘씩 후퇴한다. 문제는, 사람들은 그 후퇴가 ‘일시적인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 번 제한된 자유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안의 권위주의적 심리
독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억압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훨씬 더 강력한 것은 대중의 내면에 자리 잡은 권위주의적 심리다. 우리는 교육, 직장, 가정 등 삶의 여러 층위에서 ‘윗사람 말 잘 듣는 것’을 미덕으로 배워왔다. 질문하지 않고, 따르고,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문화는 독재가 자라나기에 매우 적합한 토양이다.
이런 문화는 정치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정치는 원래 더러운 거야”, “어차피 내가 뽑아도 변하지 않아”, “다들 자기 이익만 챙겨”라는 식의 냉소는 참여를 줄이고, 그 자리를 ‘선택받은 자’들이 채운다. 사람들이 정치적 참여를 포기하고 지켜보기만 할 때, 권력은 더욱 자신만의 방식으로 굴러가게 된다. 독재자는 이러한 상황을 매우 잘 이해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나는 당신들을 대신해 결정해주겠다”고.
법을 넘어서는 ‘예외’의 논리
독재자는 종종 ‘특별 상황’을 주장하며 법 위에 서려 한다. 카를 슈미트는 이를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가 주권자”라고 표현했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 『정치신학』, 카를 슈미트
이 말은 단지 이론적인 설명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독재자들은 ‘안보’, ‘비상사태’, ‘경제 위기’ 같은 이유로 헌법적 질서를 유예시키고, 자신만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예외 상태는 점점 일상화된다. 그리고 일상화된 예외는 결국 ‘새로운 규범’이 된다. 국민들은 점차 자유의 부재에 익숙해지고, 질문 대신 순응을 선택한다. 이렇게 해서 독재는 한 사람의 야망이 아니라, 집단의 무기력과 타협 속에서 굳어진 체제가 된다.
자유를 지키는 작은 훈련들
독재를 막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방어는 사소한 습관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뉴스를 읽고 나서 ‘왜 이런 식으로 보도되었을까’라고 의심해보는 것, 정치인의 말에 ‘모순은 없을까’를 질문하는 것, 소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들어보는 것. 이런 작은 훈련들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면역력을 높인다.
철학은 이러한 훈련을 돕는 지적 도구다. 철학은 정답을 주지 않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사유의 힘은 강력한 권력 앞에서도 ‘이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 독재는 우리 안의 게으름과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그렇다면 그것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생각하는 인간으로 남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연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늘 위태롭고, 때때로 불편하며,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존엄하게 여길 수 있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제도다. 독재는 멀리 있지 않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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