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열면 누군가는 발리의 인피니티 풀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또 누군가는 미슐랭 레스토랑의 정갈한 플레이팅을 자랑한다. 우리는 그 이미지들을 보며 '좋아요'를 누르고, 어느새 같은 장소, 같은 음식, 같은 옷을 욕망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소비 트렌드일까, 아니면 인간 욕망의 본질과 관련된 더 깊은 문제일까.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이 결코 자발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대상 자체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아이가 장난감에 무관심하다가도 다른 아이가 그것을 갖고 놀면 갑자기 그 장난감을 원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욕망에는 항상 '중재자'가 존재한다. SNS 시대에 인플루언서는 바로 이 중재자의 역할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존재다.
욕망은 어떻게 외주화되는가
과거에는 욕망의 중재자가 주로 주변 사람들이었다. 이웃의 새 차, 동료의 승진, 친구의 결혼식이 우리 욕망의 기준점이 되었다. 하지만 SNS는 이 중재 구조를 전 지구적 규모로 확장시켰다. 이제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취향, 소비, 라이프스타일을 욕망의 모델로 삼는다.
문제는 이러한 욕망의 외주화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알고리즘이 추천하고 인플루언서가 제시하는 욕망의 목록을 그대로 따라간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무엇을 입을까'가 아니라 '인플루언서 A는 오늘 무엇을 입었을까'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다.
모방 욕망과 경쟁의 구조
지라르는 모방 욕망이 필연적으로 경쟁과 갈등을 낳는다고 보았다. 같은 대상을 향한 욕망은 결국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인플루언서 경제는 이 구조를 정교하게 활용한다. 한정판 협업 제품, 선착순 할인, 품절 대란 같은 마케팅 전략은 모두 욕망의 경쟁 구도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경쟁이 소비 영역을 넘어 삶 전체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더 많은 팔로워를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전시하고 연출한다. SNS는 삶의 기록 공간이 아니라 욕망의 경쟁장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여행 사진은 그저 추억의 공유가 아니라, 나도 저런 경험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온다.
알고리즘이 설계하는 욕망
인플루언서 경제의 또 다른 특징은 욕망의 생산과 유통이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화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무엇을 클릭하고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에 따라 알고리즘은 우리의 잠재적 욕망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문제는 이것이 욕망의 발견이 아니라 욕망의 조작에 가깝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상 알고리즘이 설계한 욕망의 회로 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소비 패턴과 라이프스타일로 우리를 유도한다. 이는 지라르가 말한 모방 욕망의 메커니즘이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그렇다면 우리는 이 욕망의 외주화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라르는 욕망의 모방 구조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첫걸음이라고 보았다. 내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모방한 것인지 스스로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인플루언서 경제를 무조건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하는 대신, 그것을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이되 나만의 기준으로 걸러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SNS를 끄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간, 알고리즘의 추천이 아닌 우연한 발견을 즐기는 여유가 필요한 이유다. 욕망을 외주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가져오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철학적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