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피해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는 프리랜서들이 있다. 그들은 '회사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상사의 눈치도, 회의실의 권태도 없다. 하지만 정말 그들은 자유로운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구속 속에서 '자유롭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자유주의가 약속한 자유의 환상
신자유주의 시대는 개인에게 전례 없는 자유를 약속했다. 정규직의 안정성 대신 유연성을, 조직의 위계 대신 개인의 선택권을 내세웠다. 프리랜서, 긱 워커, 1인 기업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노동 형태는 '자기 결정권'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 자유의 이면에는 역설이 도사리고 있다. 언제든 일감이 끊길 수 있다는 불안,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강요받는 피로감. 선택의 자유는 어느새 생존의 의무로 전환되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유를 선고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프리랜서들은 정말 '선택'하고 있는가? 많은 경우 그들의 자유는 강요된 것에 가깝다.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외주화를 확대하면서, 프리랜서는 '선택'이 아니라 '선택받지 못한 자'의 대안이 되어버렸다.
자유의 무게와 불안의 내면화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의 본질은 '앙가주망(engagement)', 즉 참여와 책임에 있었다. 자유는 단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통해 세계와 맺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자유는 이와 다르다. 개인은 고립된 채 시장 안에서 경쟁하며, 실패는 오롯이 개인의 무능으로 치부된다. 사회적 구조의 문제는 은폐되고, 불안과 책임만이 개인에게 전가된다.
프리랜서들이 마주하는 자유는 이중적이다. 형식적으로는 자율성을 누리지만, 실질적으로는 시장의 요구에 24시간 대기하는 '항시 가동 상태'에 놓인다.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음 프로젝트가 보장되지 않는 한 휴식은 사치가 된다. 이들은 자유롭기 때문에 불안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더욱 자유를 갈망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진정한 자유를 위한 조건
그렇다면 프리랜서의 자유는 허상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문제는 자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떠받치는 사회적 조건의 부재에 있다. 사르트르가 후기에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를 결합하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는 사회적 조건과 분리될 수 없으며, 진정한 자유는 집단적 연대 속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프리랜서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일감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회안전망과 집단적 권리다. 건강보험, 실업급여, 노동조합 가입권 같은 것들 말이다. 자유가 생존의 불안과 동의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연대와 공동체적 해결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유는 혼자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다.
신자유주의가 판매하는 자유의 환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자유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자유의 한계를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는 삶의 형태다. 그 한계를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자유를 향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