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하루를 시작하는 현대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우리는 기술의 주인일까, 아니면 기술의 종속물일까? 매일 아침 알람과 함께 깨어나 소셜미디어를 확인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하며, 구독 서비스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상. 이 모든 것이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거대한 기술 기업들이 설계한 울타리 안에서의 제한된 자유일 뿐이다.
21세기 디지털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을 '기술봉건주의'라고 부른다. 중세 봉건제도가 토지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 위계질서였다면, 기술봉건주의는 데이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계급사회다.
기술 영주와 디지털 농노의 탄생
중세 봉건제에서 영주가 토지를 소유하고 농노들이 그 땅에서 생산한 것의 일부를 바치며 보호를 받았듯이, 현재 거대 기술 기업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소유하고 사용자들은 그 안에서 데이터를 생산하며 '무료' 서비스의 대가로 개인정보와 주의력을 제공한다. 구글, 아마존, 메타, 애플 같은 기업들이 현대의 영주라면, 우리는 그들의 플랫폼에서 살아가는 디지털 농노인 셈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흥미로운 점은 표면적으로는 상호 이익적인 거래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기업들은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극도로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숨어 있다. 중세 농노가 영주의 허락 없이는 다른 영지로 이주할 수 없었던 것처럼, 현대의 디지털 사용자들도 한 플랫폼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전하기 어렵다.
데이터 채취와 알고리즘 통제
기술봉건주의의 핵심은 데이터 소유권과 알고리즘 통제권에 있다. 중세 영주가 농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면, 현대의 기술 기업들은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채취한다. 우리가 온라인에서 클릭하고, 검색하고, 구매하고, 소통하는 모든 행위는 기록되고 분석되어 기업의 자산이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알고리즘을 통한 행동 조작이다. 추천 시스템, 맞춤형 광고, 개인화된 콘텐츠는 모두 사용자의 선택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한다. 중세 농노가 영주의 명령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면, 현대인은 알고리즘의 은밀한 조작에 따라 '자발적으로' 행동한다고 착각한다.
예를 들어, 소셜미디어의 무한 스크롤 기능은 사용자가 계속해서 플랫폼에 머물도록 설계되었다. 온라인 쇼핑몰의 '이 상품을 본 고객이 함께 구매한 상품' 추천은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이런 기능들은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목 하에 사용자의 자율성을 서서히 잠식한다.
플랫폼 종속과 선택의 환상
기술봉건주의에서 가장 교묘한 점은 선택의 환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언제든지 서비스를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네트워크 효과와 전환 비용 때문에 쉽게 떠날 수 없다. 카카오톡을 예로 들면, 개인이 아무리 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사용하는 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
또한 구독 경제의 확산은 소유에서 접근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속화했다. 음악, 영화, 소프트웨어 등을 구매해서 소유하는 대신 구독료를 내고 접근권을 얻는다. 이는 편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용자가 영구적으로 기업에 종속되는 구조를 만든다. 구독을 중단하는 순간 모든 콘텐츠에 대한 접근권을 잃기 때문이다.
저항과 대안의 모색
그렇다면 기술봉건주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중세 농노들이 도시로 도망쳐 자유민이 되었듯이, 현대에도 탈출구가 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분산형 플랫폼, 데이터 소유권 보장 등이 그 대안들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고, 의식적으로 기술 사용을 제한하며, 대안적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회 차원에서는 데이터 보호법 강화, 플랫폼 독점 규제, 알고리즘 투명성 요구 등이 필요하다.
결국 기술봉건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기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진정으로 인간의 자유와 번영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각성과 사회적 규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디지털 농노로 남을 것인지, 기술의 진정한 주인이 될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