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알람을 끄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루의 '할 일 목록'과 마주한다. 출근 전 운동, 업무 미팅, 자기계발 강의, SNS 관리까지.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지만, 이상하게도 '충분히 했다'는 느낌보다는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남는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이 겪는 번아웃의 실체다. 그런데 과거의 노동자들도 고된 노동에 시달렸는데, 왜 유독 지금 우리는 더 지쳐 있는 걸까?
성과주체의 탄생: '할 수 있다'는 자유의 역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사회를 '성과사회'로 규정한다. 과거 규율사회가 "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작동했다면, 오늘날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언어로 우리를 움직인다. 문제는 이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실은 무한한 자기착취의 면허증이 된다는 점이다. 공장 노동자는 퇴근 사이렌과 함께 착취에서 해방되지만, 성과주체인 현대인은 24시간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퇴근 후에도 자기계발서를 읽고, 주말에도 '생산적인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A씨의 사례를 보자. 그는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며 밤낮없이 작업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하지만 6개월 후, 그는 심각한 번아웃에 빠진다. 한병철의 진단처럼, A씨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자기 자신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이때의 피로는 단순한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분노하는 정신적 소진이다.
긍정성의 폭력: 우울증과 과잉활동
현대사회의 정신질환들은 부정성이 아니라 과잉 긍정성에서 비롯된다. 우울증, ADHD, 번아웃 증후군은 모두 '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과도한 긍정성을 주입받은 결과다. SNS를 열면 모두가 성공하고, 행복하고, 생산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긍정성의 과잉은 우리에게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한병철은 현대인을 "자기 자신의 기업가"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명령에 따르는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를 경영하고 최적화해야 하는 자유인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역설적으로 더 깊은 예속을 낳는다. 회사는 "자율적으로 일하세요"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당신 책임"이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실패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무능으로 치환된다.
멈춤의 예술: 사색적 삶의 회복
그렇다면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한병철은 '사색적 삶'의 회복을 제안한다. 현대인은 지나치게 활동적(vita activa)이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생산하고, 성취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다움은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능력, 깊이 사색하는 시간(vita contemplativa)에서 나온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첫째, '할 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유를 인식해야 한다. 모든 기회를 붙잡을 필요는 없다. 둘째, 생산성과 무관한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목적 없이 산책하고, 성과 없이 책을 읽고, 효율과 무관하게 친구를 만나는 시간 말이다. 셋째, 자기 자신을 프로젝트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개선해야 할 결함투성이 제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다.
번아웃 이후의 삶
번아웃은 단순한 휴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2주 휴가를 다녀와도 다시 같은 패턴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시스템의 문제다. 한병철의 진단은 명확하다. 성과사회의 구조 자체가 우리를 소진시킨다. 따라서 개인의 치유를 넘어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
물론 한병철의 철학이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당장 월세를 내야 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서 '사색적 삶'은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지금 느끼는 피로가 나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무한 긍정성을 강요하는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번아웃에서 회복하는 것은 단지 다시 생산적이 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고,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다. 오늘 저녁, 할 일 목록을 내려놓고 그냥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성과사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저항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