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어떻게 우리를 빚진 존재로 만드는가
마우리치오 라자라토(Maurizio Lazzarato, 1955~ )의 『빚진 인간』(L'homme endetté, 2011)은 현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핵심 메커니즘을 '부채'라는 렌즈로 해부한 문제작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자라토는 이 책에서 부채가 단순한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권력 장치임을 폭로한다.
부채는 경제가 아니라 권력이다
우리는 흔히 빚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한다. 학자금 대출,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빚 등을 떠올리며 "내가 돈 관리를 못해서" 혹은 "필요한 투자였으니까"라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라자라토는 이런 생각 자체가 함정이라고 말한다. 부채는 개인의 선택이나 실패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통치 시스템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부채 위기에 빠졌다.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은 천문학적 부채 때문에 국가 주권마저 위협받았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이런 상황에서 라자라토는 질문한다. 왜 빚을 진 사람들은 채무자가 되어야 하는가? 왜 은행과 금융기관의 잘못된 투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지는가?
빚진 인간의 탄생
라자라토는 니체와 들뢰즈, 푸코의 통찰을 빌려 '빚진 인간'이라는 새로운 주체를 분석한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부채가 죄책감과 도덕의 기원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빚을 지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이 의무감은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존재 자체를 채무자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보자. 대학생 A는 등록금을 내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졸업 후 취직을 하면 이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A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보다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선택한다. 결혼을 하려면 집이 필요하고, 집을 사려면 수억 원의 대출을 받아야 한다. 이제 A는 향후 30년간 은행에 빚을 갚아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이직을 하고 싶어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도, 대출 상환 계획이 발목을 잡는다. A의 미래는 이미 저당 잡혔다.
라자라토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부채는 우리의 '미래'를 인질로 잡는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통제한다. 매달 빚을 갚기 위해 일해야 하고, 소비를 억제해야 하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저축해야 한다. 부채는 우리를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존재로 만든다.
신자유주의와 부채 경제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겼다. 교육, 의료, 주거 같은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이 상품화되었다. 과거에는 국가가 제공하던 서비스를 이제는 개인이 빚을 내서 구매해야 한다. 대학 등록금은 치솟고, 의료비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싸지며,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빚을 질 수밖에 없다.
라자라토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는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채무자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빚진 사람은 길들여지기 쉽기 때문이다. 파업을 할 수도 없고, 체제에 저항할 수도 없다. 매달 대출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어떤 노동조건이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부채는 완벽한 통치 기술이다.
더 나아가 금융위기 이후 국가부채 문제가 부각되면서, 긴축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의 요구에 따라 복지를 삭감하고 공공부문을 민영화했다. 라자라토는 이를 '빚을 통한 계급투쟁'이라고 부른다. 채권자(금융기관, 투자자, 국제기구)들은 부채를 무기로 노동자와 국민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빼앗는다.
죄책감의 정치학
부채의 가장 교묘한 점은 그것이 도덕적 죄책감과 결합한다는 것이다. "빚을 갚는 것은 당연하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채무자는 자신이 빚을 졌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라자라토는 묻는다. 정말 빚을 진 사람이 잘못한 것인가? 2008년 금융위기는 누가 일으켰는가? 은행들은 무모한 대출과 투기로 경제를 파탄냈지만, 정작 책임을 진 것은 국민들이었다. 세금으로 은행을 구제하고, 긴축으로 고통받은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런데도 "빚을 갚는 것은 도덕적 의무"라는 논리가 계속 반복된다.
이 죄책감의 메커니즘은 저항을 무력화시킨다. 자신을 피해자가 아니라 실패자로 여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라자라토는 이런 도덕화 전략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저항의 가능성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자라토는 부채 거부 운동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역사적으로 채무 탕감이나 부채 거부는 여러 차례 있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왕이 정기적으로 부채를 탕감해주었고, 중세 유럽에서도 농민 봉기가 종종 부채 탕감을 요구했다.
현대에도 '부채 거부' 운동이 등장하고 있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 운동, 학자금 대출 거부 운동 등이 그 예다. 이들은 "우리는 빚지지 않았다(We Owe Nothing)"고 선언한다. 부당한 부채는 갚을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라자라토는 부채 거부가 단순히 빚을 안 갚겠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본다. 왜 소수의 금융자본가들이 다수의 삶을 담보로 이윤을 챙기는가? 왜 교육과 의료, 주거 같은 기본권이 빚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가? 부채 거부는 이런 질문들을 제기하면서, 다른 방식의 삶과 경제를 상상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빚진 인간이다
라자라토의 『빚진 인간』은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부채 시스템 안에 깊숙이 포획되어 있다. 학자금 대출부터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빚까지, 현대인의 삶은 부채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이 부채는 우리의 선택과 미래, 심지어 정체성까지 규정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라자라토는 우리에게 부채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사고할 것을 요청한다. 빚을 갚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왜 우리가 빚을 져야 하는 사회에 사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청년들은 미래를 담보로 학자금을 빌리고, 가정은 집 한 채를 위해 평생을 저당 잡힌다. 국가는 채권자들의 요구에 따라 국민의 복지를 삭감한다. 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세계에서, 라자라토는 우리에게 다시 생각할 것을 촉구한다. 부채는 갚아야 할 의무가 아니라, 깨뜨려야 할 사슬일지도 모른다.
주요인용문
부채-인간은 미래의 생산과 소비를 현재에 앞당김으로써 사회적 시간을 자본의 시간에 종속시킨다. 부채는 미래를 점령하고, 미래를 현재의 관리 대상으로 만든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권력관계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권력관계와는 다르다.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 저항할 수 있지만, 채무자는 이미 받은 돈 때문에 저항의 가능성 자체가 봉쇄된다.
부채는 죄책감과 책임의 감정을 생산한다. 니체가 말했듯이, 부채는 도덕의 기원이며, 채무자를 복종하는 주체로 만드는 장치다.
신자유주의는 사회보장을 해체하고 그 자리를 부채로 대체했다. 교육, 건강, 주거는 이제 개인이 빚을 내서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 되었다.
긴축정책은 채권자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대중의 삶을 희생시킨다. 이것은 부채를 통한 계급투쟁이다.
부채 거부는 단순히 빚을 갚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 시스템과 권력관계에 도전하는 정치적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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