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는 '읽씹'. 이 사소해 보이는 행위가 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가? 단순한 예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그 안에 현대 사회의 복잡한 관계 구조와 윤리적 쟁점이 얽혀 있다. 과거 편지를 주고받던 시대에는 며칠, 심지어 몇 주를 기다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메신저 시대에 '1'이라는 숫자는 더 이상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관계의 온도를 재는 척도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기술이 인간관계의 규칙을 바꿔놓았다는 데 있다. 읽음 표시라는 기능은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사실을 즉각 알려준다. 이는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압박을 만들어낸다. 상대가 내 메시지를 읽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답장을 기다리게 된다. 이 기다림 속에서 불안, 의심, 때로는 분노까지 싹튼다.
응답 의무는 어디까지인가
읽씹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의 핵심은 '응답 의무'의 범위다.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답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빨리 답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의무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칸트는 의무를 보편적 법칙으로 정립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만약 모든 사람이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는다면, 소통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읽씹은 일종의 도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메시지를 받는다. 업무 관련 연락, 지인들의 안부, 단체 채팅방의 끝없는 대화들. 모든 메시지에 즉각 응답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고, 때로는 답하지 않을 권리도 필요하다. 직장 상사의 야근 요청 메시지를 퇴근 후에 읽었다면, 즉각 답해야 하는가? 불편한 관계의 지인이 보낸 만남 제안에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가?
관계의 위계와 맥락의 중요성
읽씹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관계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연인 사이의 읽씹과 직장 동료의 읽씹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읽씹은 더 큰 상처가 되고, 관계가 소원할수록 읽씹은 예상 가능한 일이 된다. 이는 읽씹의 윤리가 보편적 규칙이 아니라 관계의 맥락 속에서 판단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말한 '상호작용 의례'의 관점에서 보면, 읽씹은 일종의 의례 파괴다. 우리는 일상적 상호작용에서 예측 가능한 패턴을 기대한다. 인사에는 인사로, 질문에는 답변으로 응답하는 것이 사회적 규칙이다. 읽씹은 이 패턴을 깨뜨림으로써 상대방을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상호작용이 같은 수준의 의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친밀도, 긴급성, 내용의 중요성 등 맥락적 요소들이 응답의 필요성을 결정한다.
디지털 에티켓의 재구성
읽씹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새로운 디지털 에티켓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 규범은 천천히 형성된다. 우리는 아직 메신저 시대의 적절한 행동 규칙을 완전히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읽씹의 윤리가 단순히 '답하기'와 '답하지 않기'의 이분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상호 존중과 배려다. 즉각 답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간단한 확인 메시지라도 보내는 것, 읽음 표시 기능을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시간과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역설적이게도, 읽씹 논쟁은 우리가 여전히 인간적 연결을 갈망한다는 증거다. 만약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면, 읽씹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읽씹에 상처받는 이유는 그만큼 상대방의 응답이, 그들의 관심이, 그들과의 연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과제는 기술적 편리함과 인간적 배려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읽씹의 윤리는 결국 관계의 윤리이며,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