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를 쓸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하수구를 타고 바다로 흘러간다. 그렇게 방출된 플라스틱 입자들은 물고기 몸속에 축적되고, 결국 우리 식탁 위 생선회가 되어 돌아온다. 우리 혈관 속을 떠도는 미세플라스틱은 호르몬 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게까지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플라스틱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떠다니는 쓰레기'가 아니다. 플라스틱은 우리 몸과 상호작용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능동적 행위자다.
이처럼 물질을 능동적 행위자로 바라보는 철학적 흐름이 있다. 바로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이다. 로지 브라이도티, 제인 베넷, 카렌 바라드 같은 철학자들이 주도하는 이 흐름은 전통 철학이 물질을 다루어온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물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대 이후 서양 철학은 오랫동안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를 분리해왔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선언한 이래, 인간의 정신은 특권적 지위를 누렸다. 물질은? 물질은 그저 수동적이고 맹목적이며 생기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고 형태를 만들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원료에 불과했다.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과 구조주의는 '언어적 전회'를 통해 모든 것이 담론과 해석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데는 유용했지만, 역설적으로 물질의 구체성은 더욱 희미해졌다. 모든 것이 텍스트가 되고, 해석이 되고, 담론이 되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팬데믹이 일상을 뒤흔들고,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하는 21세기, 우리는 물질이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한다.
신유물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언어와 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물질의 구체적 힘, 그 능동성을 다시 사유하자는 것이다.
사물에도 권력이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제인 베넷은 『생동하는 물질』(2010)에서 물질과 생명을 엄격히 구분하는 관습에 도전한다. 그는 오메가3 지방산이 인간의 기분을 바꾸고, 매립지의 쓰레기가 화학물질의 활발한 흐름과 메탄의 휘발성 바람을 일으키는 현상을 주목한다. 이는 물질이 단순히 인간의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만들어가는 힘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베넷이 제시하는 '생기적 유물론(vital materialism)'의 핵심은 간단하다. 물질에는 생기가 있다. 이 생기는 신이나 인간이 외부에서 불어넣은 것이 아니라, 물질 자체에 내재한 에너지다. 돌멩이조차 너무나 느린 속도로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실제로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2003년 북미 대규모 정전 사고를 분석하면서 베넷은 전기, 송전망, 석탄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이 사건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흔히 정전의 책임을 특정 기업이나 정부에 돌리지만, 사실 그 사건은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다. 이런 시각은 단순히 누군가를 비난하는 대신,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힘들의 그물망 전체를 파악하도록 만든다.
얽힘 속에서 생겨나는 세계
물리학자이자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카렌 바라드는 양자물리학의 통찰을 바탕으로 더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는 주체와 객체, 인간과 비인간이 처음부터 분리된 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이들은 '내부-작용(intra-action)'을 통해 함께 생성된다.
바라드가 말하는 '내부-작용'은 '상호작용(interaction)'과 다르다. 상호작용은 이미 존재하는 독립적 실체들 사이의 만남을 의미한다. 반면 내부-작용은 관계 속에서 비로소 실체들이 구분되고 의미를 얻는 과정을 가리킨다. 예컨대 우리 몸은 수많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미생물과 얽혀 있다. 장내 세균총 없이는 음식을 소화할 수 없고, 피부 상재균 없이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인간이라는 개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비인간 존재들과의 얽힘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현상이다.
이런 관점은 윤리적 책임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다. 바라드는 우리 몸 자체가 타자들에게 개방되어 있고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들에 대해 '언제나 이미'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 책임은 현재 살아있는 존재들뿐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와 이미 사라진 과거의 존재들에게까지 확장된다.
새로운 정치를 향하여
신유물론은 단순한 이론적 유희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체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만약 우리가 북극의 빙하, 아마존의 열대우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능동적 행위자로 인식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들은 더 이상 인간이 마음대로 착취해도 되는 '자원'이 아니라, 우리와 얽혀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된다.
도시를 설계할 때 콘크리트와 강철의 물질성을 고려하고, 정책을 만들 때 미세먼지와 방사능 물질의 행위성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신유물론이 제안하는 새로운 정치다. 인간만이 유일한 행위자라는 오만에서 벗어나, 우리는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샴푸병을 들 때마다, 플라스틱 용기를 볼 때마다, 우리는 이 물질이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와 얽혀 세계를 만들어가는 능동적 존재다. 물질이 말을 걸어온다면, 이제 우리가 귀 기울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