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입고 있는 옷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기분을 맞춰줘야 할까? 이런 사소한 고민에서부터 안락사나 사형제도 같은 무거운 윤리 문제까지, 우리는 매일 도덕적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도대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 기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문화마다 다른 도덕
인도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소고기가 흔한 식재료다.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의 운전이 금지되었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이처럼 문화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모든 도덕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상대적이며, 절대적으로 옳은 기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20세기 초 인류학자들은 다양한 문화를 연구하면서 문화 상대주의를 발전시켰다. 서구 제국주의가 자신들의 문화가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식민지를 정당화하던 시대에, 문화 상대주의는 모든 문화가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며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분명 진보적인 시각이었다. SNS 시대를 사는 우리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관습을 존중하려 노력한다.
절대적 도덕의 필요성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만약 모든 도덕이 상대적이라면, 명예살인이나 여성할례 같은 관습도 그저 '다른 문화'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자신의 문화에서는 옳다고 여겨진다는 이유만으로, 명백한 인권 침해 행위까지 존중해야 하는가? 도덕적 상대주의는 이 질문 앞에서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문화나 상황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보편적 도덕법칙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정언명령의 핵심은 간단하다. 내가 하려는 행동의 원칙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는 것이다. 거짓말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어 언어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따라서 거짓말은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없으므로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다.
칸트의 접근은 매력적이다. 문화적 차이를 넘어선 보편적 기준이 있다면, 우리는 인권 침해나 불의에 맞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칸트가 생각한 것보다 복잡하다.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원칙이 과연 존재하는가? 예컨대 안락사 문제를 놓고도 사람들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어떤 이에게는 생명의 신성함이 절대 가치지만, 다른 이에게는 고통에서 벗어날 권리가 더 중요하다.
균형점을 찾아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완전한 상대주의도, 경직된 절대주의도 현실의 복잡한 도덕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실마리는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데 있을 것이다.
우선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되, 그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음식, 의복, 언어 같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은 인류의 풍요로움이다. 하지만 생명, 자유, 존엄성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관습까지 '문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미국 철학자 제임스 레이첼스가 지적했듯, 문화마다 다른 도덕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객관적 도덕 기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되, 그것을 적용하는 방식은 유연해야 한다. 정직, 공정, 타인에 대한 존중 같은 기본 원칙들은 대부분의 문화가 공유하는 가치다. 문제는 이 원칙들을 구체적인 상황에 어떻게 적용하느냐다.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각 문화와 상황의 맥락을 고려하면서도 핵심 가치는 지키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다. 서로 다른 도덕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만났을 때, 일방적으로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거나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도덕적 상대주의와 절대주의의 논쟁은 단순히 학문적 관심사가 아니다. 기후위기, AI 윤리, 국제 분쟁 같은 전 지구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문화를 넘어선 공통의 도덕적 언어를 찾아야 한다. 동시에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는 열린 태도도 잃지 말아야 한다. 이 미묘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도덕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