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고 커피를 마실지 녹차를 마실지 고민한다. 점심 메뉴를 정하면서 오늘은 파스타를 먹을지 비빔밥을 먹을지 저울질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온전히 '나'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뇌과학과 행동경제학은 우리의 이런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 뇌는 이미 그 결정을 내린 뒤가 아닐까?
뇌가 먼저 결정한다 - 리벳의 충격적 발견
1980년대 벤자민 리벳이라는 신경생리학자가 진행한 실험은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논쟁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실험은 간단했다. 피험자들에게 원하는 순간에 버튼을 누르도록 하고, 그들의 뇌파를 측정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피험자가 '지금 버튼을 누르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하기 약 0.35초 전에, 뇌에서는 이미 그 행동을 준비하는 신경학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08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존-딜런 헤인즈 연구팀의 후속 실험이었다. fMRI를 활용한 이 실험에서는 피험자가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최대 10초 전에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했다. 심지어 왼쪽 버튼을 누를지 오른쪽 버튼을 누를지까지 60%의 확률로 예측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가 '내가 결정했다'고 느끼는 순간, 실제로는 뇌가 이미 그 결정을 내린 뒤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직관적이다 - 행동경제학의 발견
뇌과학의 발견은 행동경제학의 연구와 맞물리며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 체계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빠르고 자동적이며 직관적인 '시스템1'과, 느리고 의식적이며 논리적인 '시스템2'가 그것이다.
문제는 우리 삶의 대부분이 시스템1에 의해 작동한다는 점이다. 슈퍼마켓에서 어떤 우유를 살지, 출근길에 어느 지하철 칸에 탈지 같은 일상적 선택들은 의식적 숙고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심지어 중요한 결정들조차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합리적이지 않다. 같은 정보라도 어떻게 제시되느냐에 따라(손실로 제시하느냐 이득으로 제시하느냐), 어떤 선택지가 먼저 주어지느냐에 따라 우리의 판단은 쉽게 달라진다.
카너먼의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는 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무의식적 편향과 직관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리벳의 실험에서 뇌가 먼저 결정을 내리듯, 행동경제학에서는 시스템1이 먼저 반응하고 시스템2는 그저 그 결정을 합리화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자유의지는 환상인가, 아니면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는 단지 뇌의 생화학적 과정에 따라 움직이는 정교한 기계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 실천적 함의를 지닌다. 만약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의지가 없다면, 범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도덕적 판단의 근거는 무엇일까?
하지만 많은 철학자들은 리벳의 실험이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행위와, 복잡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윤리적 선택은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리벳 자신도 '거부권(veto)'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뇌가 먼저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는 그 결정을 실행하기 직전에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자유의지를 '뇌와 독립된 어떤 것'이 아니라 '뇌의 복잡한 과정 그 자체'로 이해할 수도 있다. 무의식적 과정과 의식적 숙고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그 총체적 과정이 곧 '우리'이고, 그것이 내리는 결정이 곧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관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과정에 따라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논의는 우리에게 실천적 함의를 준다. 우리의 선택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인식은, 역설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자신의 무의식적 편향을 이해하고, 중요한 결정 앞에서 의식적으로 시스템2를 작동시키려 노력하며, 선택의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는 것. 이것이 제한적이지만 의미 있는 우리의 자유다.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지도, 완전히 결정되어 있지도 않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여전히 선택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