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을 혐오한다. SNS에서 마주치는 특정 집단의 발언,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 뉴스에서 보도되는 범죄자의 얼굴. 이런 혐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혐오함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확인한다. "저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 말이다. 불가리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1980년 출간한 『공포의 권력』에서 이 메커니즘을 '아브젝트'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아브젝트는 주체도 대상도 아닌, 그 경계에서 배제되고 추방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배제의 과정이야말로 개인과 사회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배제된 것들이 우리를 만든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주체는 아브젝트를 통해 형성된다. 유아가 어머니의 몸과 하나였던 상태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주체가 되려면, 어머니의 몸을 '나'와 구분되는 이질적인 것으로 밀어내야 한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배제하는 것이 본래 나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우유 표면에 생긴 막, 썩은 음식, 시체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강렬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들은 안과 밖의 경계가 불분명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보며 우리 자신의 취약성을 마주하게 된다.
현대 사회는 이 배제의 논리로 작동한다. 정상과 비정상, 깨끗함과 더러움, 시민과 비시민. 우리는 끊임없이 경계를 긋고 특정한 것들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난민, 노숙인, 성소수자, 정신질환자. 이들은 사회가 만든 '정상성'의 범주 밖에 놓인 아브젝트다. 그리고 이들을 배제함으로써 '정상적인' 시민의 정체성이 구성된다. 문제는 이렇게 배제된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리스테바는 아브젝트가 무의식 속에 남아 끊임없이 주체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혐오하는 것들은 사실 우리 안의 무언가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몸, 가장 근원적인 공포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 이론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모성과의 연결이다. 그녀는 아브젝트가 기본적으로 모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주체가 되려면 어머니의 몸을 추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혐오스러우면서도 그리운 이중적 존재가 된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발달 과정만을 설명하는 게 아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몸, 특히 모성은 불결하고 부패한 것으로 폄하되어 왔다. 출산, 월경, 수유와 같은 여성의 신체 현상들은 '더러운 것'으로 치부되며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배제는 계속된다. 수유실은 여전히 구석진 곳에 숨겨져 있고, 생리에 대한 공개적 언급은 금기시된다. 임산부는 직장에서 눈치를 봐야 하며,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사적 영역으로 간주된다. 크리스테바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모성을 자연스럽고 신성한 것으로만 이상화하는 담론도, 모성을 더럽고 비천한 것으로 배제하는 담론도 모두 모성의 복잡한 현실을 은폐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몸이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작용한다고 말하며, 모성을 단순히 자연으로 환원하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려 했다.
예술, 배제된 것들의 귀환
크리스테바는 예술이 아브젝트를 다루는 특별한 영역이라고 본다. 예술은 사회가 배제한 것들을 다시 불러들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혐오스러운 이미지, 금기시되는 주제, 불편한 진실들이 예술을 통해 미학적 경험으로 전환된다. 현대미술에서 신체의 배설물, 부패, 피와 같은 소재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은 관객에게 불쾌감을 주지만, 동시에 강렬한 매혹을 느끼게 한다.
크리스테바가 분석한 프랑스 작가 셀린의 문학이 그랬다. 셀린은 질병, 육체의 붕괴, 전쟁의 참혹함을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욕지기를 유발하면서도 현실의 본질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예술은 이처럼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정면으로 드러냄으로써 상징계의 질서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그 균열을 통해 배제된 것들이 새로운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아브젝트가 존재한다. 혐오 발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차별받는 소수자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 노동자들. 크리스테바의 통찰은 이것이 단순한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구성 방식 자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무언가를 배제함으로써 '우리'가 된다. 하지만 배제된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무의식 속에서, 사회의 그림자 속에서, 예술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되돌아온다.
크리스테바가 제안하는 것은 이 아브젝트를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다. 배제된 것들을 인정하고, 그것과의 관계를 재사유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 새로운 주체성을 구성하는 길이다. 혐오는 권력이다. 하지만 그 권력을 성찰할 때, 우리는 더 풍부하고 복잡한 인간 존재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